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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이 와도 봄같지 않은 날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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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22일 정매화골에서..


등나무
 

투덕투덕 뭔가 떨어지는 소리가 났습니다. 가던 걸음을 멈추고 산들바람에 섞여 있는 그 소리의 진원지를 찾아보았습니다.

5~6월이면 나비 같은 꽃잎들을 모아 어른 팔뚝서리만한 꽃송이를 만들어 내던 등나무의 씨앗이 떨어지며 땅에 부딪히며 내는 소리였습니다.

꽃송이만큼이나 큼지막한 씨앗주머니를 보고 꽃이 크니 씨앗도 커구나 한참을 내려다보았습니다

참 희한합니다, 모질게도 흔들어 댔을 동삼바람에도 버티어 내었을 씨앗이 작은 봄바람에 떨어지며 입을 벌려 씨앗을 뱉어내다니 ..

그렇다고 후루룩 다 떨어지는 것도 아니었습니다, 더러는 그대로 달려있어 저놈들은 왜 저러고 있나 잡아당겨보았습니다. 나무 조각 만큼이나 딱딱한 꼬투리가 덩굴에 단단히 매달려 있어 더 힘을 주면 손바닥 껍질이 벗겨질 것 같았습니다.

‘아하 저들도 달이 차고 때가 되어야 떨어 지나보다’

초목들은 한 가지만 생각합니다, 저들의 목적은 오직 종족번식에 있으니 때를 기다려 싹을 틔우고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는 일에만 집중합니다.

죽은 뒤에 영광이 무슨 소용인가 싶어 이것집적 저것집적 목표를 정하지 못하고 헤매며 황황(遑遑)히 살아가는 대부분의 인간들에 비하면 얼마나 충실한 삶인지요.


공공에 적이 되지 않은 한 한 가지 일에 목적을 두고 한눈팔지 않고 내 달릴 수 있다는 것은 용기 있는 일이고 아름다운 일이라는 것을 세삼 느낍니다.

2010, 3, 26 박경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