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0년 전 그날을 생각하며...(6월 19일 옛길걷기)
슬며시 차고 않은 여름이 안개를 피워 올리는 요즘 불쑥 장미가 피어 있음을 봅니다. 예를 들어 어제저녁 퇴근 때만해도 아무런 조짐이 없던 장미가 밤사이 강렬한 주황색으로 피어 있었기에 코를 아니 대어볼 수 없었습니다. 종종 그 맛에 일부러 샛길을 따라 걸으며 분홍색에 진홍색 연노랑에 진자주의 장미들에게 코를 박으며 향기를 음미하곤 합니다. 장미에 조금만 관심이 있는 분이라면 아실 것입니다 꽃 색깔마다 향기가 다르다는 것을... 난 정확하게 장미가 어느 계절에 피는 꽃인지 모르겠습니다. 아카시아가 필 때쯤 흐드러지게 피는 줄장미를 볼 때면 아 장미의 계절이 돌아왔구나 생각하지만 한겨울에도 꽃집에만 가면 형형색색의 장미꽃이 다발다발 묶여 있기에 정확하게 개화기가 언제인지 헛갈립니다. 특히나 이상기온으로 계절의 경계가 불분명한 요즘 겨울 꽃이 늦봄에도 피고 봄꽃이 가을에도 핌을 종종 보기에 침대는 “과학입니다”라는 선전을 보고 자란 아이가 침대가 가구에 속한다는 것을 이해하지 못해 이상한 아이로 취급받았다는 이야기처럼 너나 나나 본 것만 믿으려하는 세상에 상식 없고 지식 없는 사람으로 비춰지는 일도 종종 있는 것 같습니다. 자기가 본 것 경험한 것이 아니면 믿지 않으려는 것이 어디 한 두 가지겠습니까? 마음에 들지 않으면 언제든지 세상을 불바다로 만들어 버리겠다는 또 그러고도 남을 집단이 있다는 것을 경험해 보지 않은 세대들은 믿지 않습니다. 6.25라는 단어와 전쟁에 대한 두려움을 늙은이들의 넋두리쯤으로 여기는 젊은 세대에게 한국동란은 어떤 식으로 이해되고 있을까요. 나 역시 참전 용사인 아버지는 그 전쟁을 가슴으로 이해하고 그 이야기를 듣고 자란 나는 머리로 이해하는 입장이고 보면 게임을 좋아하는 젊은이들은 스위치만 빼 버리면 사라져 버리는 게임쯤으로 생각하는 것은 아닐지..
6월 19일 토요일, 울릉산악회 주관의 옛길걷기 행사가 있었습니다. 습도 많은 무더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어린아이를 포함해 주민들과 관광객 약 35여명이 울릉읍 도동 여객선 선착장 뒷편을 출발해 행남 바닷길을 걸어 저동 촛대바위를 지나 초등학교 옆 능선을 오른 후 용바위골을 가로질러 장재와 이어지는 까깨등을 오른 후 안개속의 소부랄 산을 넘어 사라진 마을 백운동으로 하산해 맑은 날이면 독도가 보이는 석포를 지나 섬목으로 내려오는 길을 걸어 일주도로 끝 섬목에 닿았습니다. 지금도 사람들이 왕래를 하고 있는 곳이 있는가 하면 발길이 끊어진지 오래된 길도 있었습니다. 잊지 않고 있는 누군가의 기억으로 그 곳에 길이 있었노라 전해주고 용기 있는 사람들로 인해 다시 살아난 길들은 우리들을 섬목까지 이르게 해 주었습니다. 무더위 속에 힘들어 지친 몸이 반란을 일으킬 즈음에 다다른 옥빛의 푸른 바다와 괭이 갈매기들이 날아다니는 섬목은 ‘무릉도원’이 별건가 싶을 정도로 시원했습니다.
힘은 들었지만 오늘 우리들이 걸은 길들은 기억 속에 각인되어 다시 전해질 것입니다. 그곳에 길이 있었노라고..
이 자유와 풍요로움, 60년 전 그날 목숨을 바쳐 자유를 지킨 많은 사람들의 희생이 있었음에 가능한 것임을 생각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