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향은 내 사랑

image001.jpg지난 614 15일 “울릉초등학교 제52회 전국동기생모임”을 대구현풍에서 개최했었는데,
 
 서기 2012년 다음(런던)올림픽이 열릴 때쯤에 동기생들이 회갑잔치 및 기념 여행을 하자
 고 약속하는 자리에서 고향친구들로 부터 울릉초등학교 개교 100주년기념 행사에 대한  
 준비상황을 상세히 듣고, 육지에서도 개교100주년기념행사를 한 곳이 손꼽힐 정도인데,
 울릉초등학교의 개교100주년 이야 말로 정말 대단한 경사요 자랑스러운 일이며, 길이
 길이 기념할 일이라면서 감격하며 가급적 많은 동기생들이 기념행사에 참석할 수 있도록
 서로 독려하기로 했습니다
 
  이튿날 아침 52회 동기회 최초로 단체관광을 “전국 아름다운 길 100선” 중에서 전국 1
  를 차지한 남해의 “창선삼천포대교”로 가게 되었는데 출발하기 전에 비슬산 기슭에 자리한 영화 “빨간마후라”의 실제주인공인 “유치곤 장군 호국기념관”을 둘러본 후 “유치곤 장군동상”과 “빨간마후라 노래비” 앞에서 동기생들이 미리 맞춤해간 빨간색 스카프를 하나씩 목에 두르고  다 같이 오른손을 들어 박자를 맞추며 빨간마후라 노래와 울릉초등학교 교가를 힘차게 부른 후 “환영 울릉초등학교 52회 동기회”란 플래카드를 앞에 두르고 기념촬영도 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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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속도로로 진입하기위해 비슬산 중턱을 내려오는 버스 속에서 잠시 상념에 젖었는데 8월 하순에 있을 개교 100주년 기념행사를 생각하면서 발길은 이미 도동항 부두에 닿아있었고 마음은 모교운동장 돌계단을 힘차게 오르고 있었습니다

 또한 지나온 50여년의 고향과 객지에서의 추억들이 순간에서 순간으로 오버랩 되기도 하고 파노라마가 되어 펼쳐지면서, 갈매기 울음소리를 들으며 육지를 동경하던 섬 소년의 작은 가슴속에 들어와 울렁거리기 시작 했습니다

 우산초등학교 6학년 말에 육지에 있는 중학교에 합격하여 시작된 객지 생활 탓인지는 몰라도 고향에 대한 동경은 다른 친구들보다 좀 일찍 시작 되었고 하숙집 골방 좁은 창가로 넘어 가는 석양만 바라봐도 “어머님 품속인 양  내 항상 그리운 곳”ㅡㅡ내 고향 울릉도 도동의 정경들이 떠오르며 부모님과 형제자매, 고향동무들의 얼굴이 눈앞에 아른 거리며 저절로 눈물이 나던 때가 많았습니다.

 나이가 들수록 고향이 그리워지는 것이 비단 나 혼자만의 일은 아니겠지만(수구초심(首丘初心)이라 했던가요)  언제부터인가 고향이 그리워질 때 면 나도 몰래 울릉도관련 사이트에 들어가 고향의 정경들을 바탕화면으로 확대해 놓고 일찍이 부모님 곁을 떠나 향수를 달래던 시절에 듣던 노래들이나, 가요무대의 지난 동영상들을 보며 시름을 달래거나, 거의 매일 울릉군청 홈페이지의 실시간 웹방송 동영상을 간간이 보면서 저는 요즈음 너무나 행복해 하며 감격해 하며 감사하는 마음으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우선 그리워하는 고향이 늘 거기에 있어 좋고, 그리워할 고향이 있는 것 자체가 다행한 일이고, 전 세계인을 통하여 동심의 고향산해를 실시간 웹방송으로 볼 수 있는 사람들이 우리 울릉인 특히 울릉초등학교 졸업생들 이외에 과연 몇 명이나 될까 생각하며 이 얼마나 엄청난 일이며 또한 행운이라 여기고 있기 때문입니다.

 
독도의 괭이갈매기 나는 모습이나 울음소리를 생생히 현장감 있게 보고 들으면서, 서도에 부딪혀 부서지는 파도를 내려다보면서 바람의 방향을 짐작해보기도 하고, 독도의 저녁노을을 바라보면서 일본의 독도 침탈행위에 목숨을 거시고 가족이 보고 싶어도 입도하지 못하시고 묵묵히 북서쪽 하늘을 바라보시며 눈시울 적시던 故 홍순칠(울릉초등 29회,홍순칠님의 선친이신 홍필열(울릉초등8회?,11회)님께서는 울릉초등학교 교가를 작곡하신 유명음악가 이심) 독도의용수비대장님과 대원님들을 생각하면서 임들의 선견지명과 우국충정에 저절로 고개가 숙여지기 때문이며 또한 실시간 웹방송 동영상을 마련해주신 K B S와 울릉군청 관계자 여러분들께도 감사드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서기 1882년 울릉도 개척령이 내려진지 26년 되던 해인 1908년 백두금강정기 받은 우산의 성인봉 밑에 배움의 터전을 잡은 울릉초등학교가 개교 100주년을 맞이하게 되었음은 졸업생의 한사람으로서 경하해 마지않는 바입니다,  

 모교가 개교 100주년을 맞이한 지금 축하행사 준비로 한껏 들뜬 분위기이지만 잠시 마음을 가라앉히면서 동심의 소중한 추억들을 회상해보면서 고향의 현재 미래를 곰곰이 생각해봅니다.

 
울릉도는 개척당시에 삼나무그루터기에서 6,7명이 앉아 밥을 먹을 수 있었다는 사실이 말해주듯이 울릉도의 울자가 상징하듯 그 울창한 삼림들은 러시아, 일본 사람들의 남벌 약탈로 인하여 사라진지 이미 오래되었고, 큰 연변에 수북이 쌓였던 왕 고동 껍질은 다시 볼 수 없고, 엘에스티이(LST)가 도동 연변에 상륙하면 앞 다투어 구경 가던 시절, 하시게(艀:거룻배를 뜻하는 일본어)가 도동항의 주인 노릇하던 시절 , 故 이치도(울릉초등 27회로, 53회 이상필동문의 선친 이심) 어르신 댁의 착착쿵이 연통 소리와, 진흥호, 재건호 등의 발동선들의 엔진 소리, 스크루우 소리가, 석양 무렵에 도동항 절벽에 부딪혀 울려 퍼지던 정경들은(울릉팔경중 하나인 도동모범(?)(道洞暮帆)) 차차 세월의 저편으로 멀어져만 가고...... 

 여름방학이면 복판축항에서 딴 바위까지 헤엄쳐서 가던 일, 겨울에는 신발에 눈이 녹아 질벅거릴 정도로 눈썰매, 대나무스키타면서 넘어지고 뒹굴고 하던 학동 댁 밭은 사라지고, 함박눈이 쌓인 동백꽃이 피던 정적의 약수탕 골짝도 더욱 그립고, 눈 내린 달 밝은 밤 동네누나들과 기차놀이 자세로 납작 고무신 썰매 타다가 개울에 넘어지고 떨어져 처박히던 일......
 
눈 내리던 날 단팥죽(젠자이(日)<善哉>:당시 일본말인 줄도 모르고 우리는 이렇게 불렀음) 몰래 사먹고 입 헹구며 세수할 때도 유난히 따뜻하게 느껴졌던, 물맛 좋기로는 어머님 젖 맛 다음 가는 청국샘물도, 숨바꼭질하던 능금손자 나무도 더욱 그립기만 합니다.

  
태풍이 지나간 후로 기억되는데 강꼬(日)의 파선된 조각판을 타고 딴 바위 가기 전 외다리가 놓여 진 수중동굴 사이로 카누 흉내 내며 손으로 노를 저으며 숨죽이며 들어가던 그곳은 부두건설로 보이 지 않고,.....

 
봄이 다 지나갈 무렵이면 뽈뚜 (봄 보리밥나무 열매)따서 씹어 먹고, 손꽁치 물회 참기름과 설탕 넣고 맛있게 먹으며 즐거워하던 일, 여름이면 따끈따끈 감자떡 호호 불며 먹으며, 산딸기 밥그릇에 짓눌러 다져먹고, 잉크색 산벗 나무(섬벗 나무? 왕벗나무?)열매 술을 마시며 친구들과 기타 치며 놀던 그 시절, 가을이면 마구막(마가목(정공등)의 열매) 씹으면서 오박골로 소풍가던 일!!

아직도 그 맛이 당기는 곤대서리(섬초롱꽃), 부지깽이(섬쑥부쟁이), 미역취, 삼나물(눈개승마), 고비(참고비,구척?), 전호, 엉개(개두릅?땃두릅?), 물엉겅퀴(섬엉겅퀴)(대개?), 맹이(산마늘)나물들 강낭감자 꽁당보리밥에 맹이지 쌈 싸먹고, 식은 밥에 이까(烏賊:오징어의 일본어)회, 이면수(세치), 메바리(열기)매운탕 국물이!!
방어회와 삶은 문어 초장에 찍어 실큰 먹고 싶은 것을 숨길수가 없는 것은 꼭 저 혼자만의 일은 아니겠지요?

 
지금도 박정희 당시 국가재건최고회의 의장님이 울릉도를 방문했을 때 도열한 저희들 앞을 지나시며 너희들 몇 학년이냐고 물으시던 기억이 생생하고, 세숫대야로 도동 연변이나, 고개(잿만당())너머 저동에서 검은 모래를 줄지어 나를 때면 수업 안한다고 좋아 했었고, 모래는 다 검은 색인 줄로만 알았던 그 시절이 너무나 그립습니다!!
 
이제 그 누구도 다시 돌아갈 수 없는 가물거리는 세월의 저편 언덕으로 소중한 추억들이 손짓을 하지만 ......
천양호, 영풍호, 명석호, 금파호, 청룡호, 동해호, 한일호 세대인 동창생님들은 같은 정서를 갖고 있기에 다 같은 마음 일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100년이란 세월은 정말 길다고 보면 길고 짧다고 보면 짧을 수도 있는 세월이라는 것을 새삼 느낍니다.
 흔히들 말하는 미래를 내다보는 교육백년대계란 말이 현시점에서 보면 흘러온 과거지사가 되었고, 절해고도 울릉도 도읍지 도동에 울릉초등동문들이 다 같이 힘을 모아 금자탑적 기념비를 세우게 되었으니 정말 기쁘기가 한량이 없습니다.  

 이제 다시 100년을 내다보는 시점에서 같이 축하를 할 수 있음은 우리 모두가 축복을 받았다고 해도 과언은 아닐 것입니다.

 
그러나 얼마 전에 모교 보다 역사가 조금 뒤진 태하초등학교가 폐교되었고, 이제 터널개통으로 거의 같은 마을이 되어버린 사동의 장흥초등학교가 폐교 되어 울릉초등학교에 합쳐진지가 벌써 오래 되지 않았던가요?

 
제가 초등학교를 졸업하던 때는 2개 반 108명이 졸업하였고, 그 이후 울릉도인구가 3만명을 넘을 때도 있었건만 지금은 1만명을 유지하기가 힘이 드는 현실이 말해 주듯이 개교100주년인 금년에 제95회 졸업식에서 29명이 졸업하였다는 기사를 보고 개교100주년을 앞 둔 학교가 혹시 폐교의 위기에 처하지 않을까 걱정 한 적도 있었습니다.

 
모교의 개교 100주년에 즈음하여 고향의 앞날과 독도를 걱정하는 마음에서 라파데르의 명언을 떠올려 보며, 독도 수호에 대한 개인적 의견을 올려봅니다

 
“다른 사람으로부터 사랑을 받지 못하는 사람은 다른 사람을 사랑하지 않는다.”라고 했습니다

 우리 모두 고향인 이나 출향인 이나 서로 칭찬하며, 이해하고 배려하면서 사랑을 주고받도록 노력한다면 고향의 미래는 더욱 밝아 질 것이 라는 것을 확신합니다.

 
또한 심심하면 튀어 나오는 독도문제도 실효적 지배를 강화 한답시고 시설물 건축 등을 운운 하는 데 이것은 곧 독도의 환경은 물론 독도의 비경이나 미관을 크게 해칠 수 있는 경솔한 발상임으로 절대반대 하며 그 대안의 일부로서 독도가 아닌 독도에서 가장 가까운 지대에 독도지원 전진기지를 하루속히 건설하여 수시로 독도를 감시하고 더 많은 인원을 평상시에도 유지, 관리하여 유사시에 효율적으로 대처 할 수 있도록 하는 것도 하나의 대안이라고 생각됩니다

 그러나 울릉도나 독도가 지나치게 군사적으로 요새화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 되며, 평화적 인도적으로 해결하기 위한 외교적 노력을 게을리 하지 않음과 동시에, 환 동해권의 중요성을 더 이상 강조하지 않더라도, 지정학적 관심사이며 지리적 요충지역인 울릉도와 독도에 대한 특별법을 제정함과 동시에, 국고를 최대한 신속히 지원할 수 있도록 해야 하며, 지금 당장도 급한 일이겠지만 좀 더 한 발짝 내다보면서 미래의 수요확대와 상황전개에 걸 맞는 예산편성을 함으로써 명실상부한 환 동해권의 중심국가로서 주인의 역할을 다해나가야 한다고 봅니다.

 
이러한 조치가 평소에도 연속으로 이루어져야 실질적 실제적 실효적 지배를 하는 것이 되고 우리의 영토가 분명한 이상 당당하게 국토방위차원에서 임해야 된다고 사료됩니다.

 
끝으로 1년 전 부터 개교100주년 기념식에 참석하게 되면 고향에서 친구들과 같이 부를 노래 100곡을 엄선하는 도중에 고향을 방문할 때 친구들과 술 한잔하면서 불러도 손색없는, 불세출의 가수 남인수선생의 제2의 히트곡 “고향은 내 사랑” 이란 노래를 가요무대에서 여러 번 접하고 울릉초등학교 52회동기생 애창곡으로 선정하였기에 그 가사를 고향의 정서에 맞게 개사하여 소개해 드리고자 합니다.

 지금까지 두서없는 글을 끝까지 읽어 주신 모든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를 드립니다.

 <상기 글은 울릉초등학교 개교 100주년 기념 "울릉초등 100년사"에  기고한 내용을 일부 재구성하여 올린 글 입니다.>
  
  고향은 내 사랑

                                                                                 
    작
; 호동아   개사:유람선
      
작곡: 박시춘
  
노래: 남인수

        
  참나리가 피어있네

고향에 묵은 꿈속의 날

잘 있소 잘 가오

눈물로 헤어지던 날

그대는 대답 없고

도동항 산울림만 울려주니

그때 피었던 참나리가 피어있네


동백꽃이 피어있네

어릴 때 놀던 학동 댁 밭

꼭 오지 꼭 오마

손가락 걸어 본 시절

그녀는 가고 없고

청룡호 고동소리 흔적 없네

그때 피었던 동백꽃이 피어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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