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762_1.jpg


 

1962년 봄 통구미 마을에 홍역이 돌았다. 온 동네 아이들이 죽음과 싸웠다.

반타작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많은 아이들이 죽어나갔다.

우리 집 또한, 5 살배기 나와 3 살배기 동생이 홍역에 걸렸다

하룻밤 사이에 두 명의 아이가 죽어 나간 뒷집에서부터 앞집 옆집 할 것 없이

아이들이 죽었다는 소문이 진실과 허실이 섞여 문지방을 넘나들었다

우리들도 생과 사의 경계를 쌓았다 허물었다 를 반복했다

엄마의 고된 시집살이를 이기게 했던, 시집 온지 칠년 만에 얻은 자식들은

엄마의 삶의 끈이었고 희망이었기에 저것들이 죽으면 나도 이 집을 떠나리라 작정하고 죽음과 싸웠다

온 동네 아이들이 다 앓는 돌림병이지만 자식들의 아픔이 부정한 것을 가리지 못한 자신 때문은 아닐까,

궂은일에 속하는 초상을 본 때문은 아닐까,

배속에 새끼를 품은 줄도 모르고 초상집에 팔아 죽게 만든 돼지의 한 때문은 아닐까, 자책하며

거북 등 껍질처럼 턱턱 갈라진 혓바닥에 물 한 모금 삼키지 못하는 아이 둘을 안고

저승 문을 막고 서서 세상의 모든 신들과 죽은 조상들에게 떼를 쓰며 매 달렸다

'살려주시오, 살려주시오, '

그렇게 온 가족의 애간장을 태우며 생과 사를 넘나들던 아이들 중 큰 애가

어느 날 쉰 목소리로 뜬금없는 요구를 했다

“벼락산 밑의 작은 할머니 집에 가자, 작은 할머니 집에 가자”

언제 죽을 지도 모르는 아이가 다섯 해 동안 배운 짧은 단어로 벼락산 밑에 사는 작은 할머니 집에

가자고 졸랐다.

한두 번도 아니고 자꾸만 보채는 그 말에 죽을 때가 되어서 하는 말인가 싶기도 해

아픈 아이를 업고 갈 순 없어 사람을 시켜 할머니를 모시고 오게 했다.

그 할머니가 방안에 들어서면서 하신 말씀이 "못 볼 것을 보았구나,

삼 (질력 (疾疫)...삼재중의 하나) 이 끼었구나. 푸닥거리 할머니를 불러야 되겠구나."

정말 못 볼 것을 보아서 인지 삼이 끼어서 인지 그 말을 듣고부터 할머니의 얼굴을 보고부터,

단 논이 물을 빨아들이듯 물을 받아먹고 비칠비칠 일어나 어른들 밥상에 얹힌 김치조각을

우적우적 씹어 댔다. 다른 것도 아닌 김치 뿌리만 씹어대며 쩍쩍 갈라진 혓바닥의

허물을 벗겨내던 아이는 용케 삶의 끈을 잡고 버텼다

그 봄 상여도 없이 떠난 작은 아이들은 어른들이 묻히는 양지바른 공동묘지에도 가지 못하고

떼도 없는 음침한 산골짝 자갈밭 애장 터에서 밤마다 울어대더라는 소문만을 남긴 체 사라졌다.

불러도 대답 없는 이름만 남긴 체 사라졌다

다행히 애장 터에 터를 잡지는 않았다 해도 살아남은 아이들은 후유증에 시달렸다

약해질 대로 약해진 아이들은 거미 같은 모습이었다.

댓잎이며 파뿌리며 몸에 좋다는 것은 다 달여 먹여도 시랑고랑 앓아대던 아이들은 털고 일어나질 못했다

자라지 못하는 아이들은 새들새들한 모습으로 시간과 놀았다

촛농처럼 녹아내리던 엄마의 가슴은 늘어나는 시간만큼 눈물과 한숨으로 채웠고 우리들은

그 눈물과 한숨을 먹고 새살 돋은 붉은 입술로 살아남아 이름 석자를 당당히 호적에 박았다

같은 병으로 죽음과 싸운 사촌 또한 붉은 줄을 뛰어 넘어 살아남았다

그 해 봄은 길고도 지루했다


"우리 집안은 그 해에 애들을 하나도 없애지 않고 다 살렸다."

총 칼 들고 싸우는 것 많이 전쟁이 아니다.  전염병도 전쟁이다

그 전쟁 통에 아이들을 다 살렸다는 엄마의 자부심은 80년을 버티어온 삶의 뿌리다

그 엄마가 입원을 했다 수시로 발병을 하는 천식 때문이다

강했던 정신력은 어디로 가 버렸는지 그 때의 아이들 처럼 허물어져 가는 모습으로
숨쉬기 조차 힘들어하며 침대에 누워있다

세월이 좋아 병원에만 오면 숨쉬기가 수월하다 하지만 고통이 오죽하랴

아무리 내리 사랑이라지만 그 사랑 백분의 일도 갚지 못하고

그 고통 만분의 일도 나누어 질수 없으니 이 일을 어쩌면 좋은가.

가끔 내가 왜 태어났을까 원망했던 마음과 삶이 괴롭다 불평했던 것들이

얼마나 휘황찬란한 사치 였던가 뉘우친다.

그 봄 우리들을 살리기 위해 몸부림친 서른 두 살의 엄마를 생각하며

병든 팔십의 엄마를 위해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나 자신의 무능함에 가슴을 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