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중령에서 태어났다.
넓고 푸른 울릉도의 바다를 내려다 보고 유년 시절을 보내며 기개를 키워서였을까, 고려대학교를 졸업하고 미국 아리조나 주립대학교에서 약관 34세에 고려대학교 사범대학 체육교육과 교수로 부임을 하게 된다. 바로 울릉도 중령에서 태어난
진훈(70년생, 중령)교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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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대학교 정문 캠퍼스 앞의 박진훈 교수

울릉도 중령에서 태어났으나 일찍 부모님과 함께 다섯 살 즈음에 부산으로 나가 터를 잡는 듯 하였으나 가난을 피할 수 없어 누님과 함께 다시 울릉도로 귀향을 하고 장흥초등학교로 전학을 오게 된다.

 

부모님은 부산에 계셨고, 할머니와 할아버지께서는 중령에서 계속 계셨습니다. 그 당시에는 할아버지 할머니 밑에서 같이 살았습니다. 3학년 때에 전학을 와서 4학년 때까지 다녔습니다.

 

울릉도라고 하는 기억 속에서 사라질 수 없는 동해의 섬이 아니었다면 어쩜 박교수는 어렸을 적 기억을 잊어버렸을지도 모르겠다. 어린 나이에 고향을 떠났으나 한시도 잊어 본적이 없다는 그는 울릉도 소는 곧 약소라는 브랜드 소로 명품화시킨 박용수 사장의 조카이다. 꽤나 많은 삼촌과 숙모를 두고 있다.

 

아버님 형제가 총 9남매인데 저의 아버님(박용해)께서는 재 작년에 돌아가셨습니다 만은 모두 중령에 사셨습니다. 외할아버지께서 처음으로 울릉도에 들어오셨다고 전해 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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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려대학교 캠퍼스 이모저모

고등학교 2학년 때에 서울로 온 그는 중동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바로 고려대학교 사범대학 체육교육과에 91학번으로 들어왔고, 97년도에 졸업을 하게 된다.

울릉도에는 가끔 들어가는지 슬쩍 물어 보았다.

대학 시절에 한번 들어갔다 왔습니다 만은 졸업하자 마자 바로 유학을 가게 되었고 바쁜 생활을 하다 보니 거의 못 간편이지요. 이제부터라도 시간이 나면 자주 가볼 생각입니다.

 

역시 피는 못 속인다고 했던가? 인터뷰 내내 박교수는 박용수 사장과 참 많이 닮았다고 느꼈다. 안경 아래로 웃는 모습이 꼭 박사장과 마주 앉아 이야기 하는 느낌이다. 목소리에서 나오는 울림이 낭랑하고 차분하여 맑고 상쾌한 느낌을 준다. 해외유학을 그렇게 쉽게 결정할 수 있었습니까?

 

3학년부터 앞으로의 진로에 대해 고민을 좀 했습니다. 학교를 다니면서 공부에 대해서 관심이 있었던 같습니다. 그래서 수업 들었던 과목들 중에서 운동학습 및 운동제어 즉, 인간의 동작이 어떻게 이루어지며 운동이 어떻게 학습되는가?       이런데 관심을 가지게 되자 선배들과 토론을 하게 되었고, 해외에 가서 공부를 더 하는 것이 좋겠다는 결론을 냈습니다. 미국의 대학교에서 합격 통지서를 받고 졸업하자마자 바로 떠났습니다.

 

97년도에 졸업을 하고 바로 미국으로 유학을 떠났다면 그 때가 바로 환란위기인 IMF 때였을 텐데 유학생으로서는 가장 어려운 시기가 아니었는가 말이다. 모두들 공부를 중도포기하고 귀국하는 학생들이 많았을 그런 때가 아니었던가? 어떻게 계속 공부를 할 수 있었을까 궁금해진다.

 

모두들 힘들 때였습니다. 가락시장에서 부모님이 식당을 하고 있었는데 저를 뒷바라지 해주느라 고생이 많았습니다. 다행히 미국에서는 연구조교 라고 해서 제가 연구원에 등록이 되어 한 달에 100만원 정도 받을 수 있어서 참 좋았습니다. 큰 도움이 되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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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교문 앞에서의 박교수 

미국에 들어가서는 어학코스를 별도로 밟지 않고 바로 석사코스로 갔습니까?

, 그렇습니다.

그럼 여기에서 영어공부를 별도로 많이 했겠군요.

그냥 평소대로 영어를 준비했었고, 고려대에 온 교환학생들과 태권도를 하다가 보니까(박교수는 태권도 3단이라고 했다), 동아리가 태권도부였으니까요. 외국학생들이 태권도 동아리에 많았기 때문에 영어에 익숙해진 편이었지요. 국내에서 영어를 많이 해 보았자 미국 공항에 내려서 말하다가 보면 헤매기는 마찬가지에요.

 

박교수는 미국에 가서 그 쪽 사람들의 문화에 어떻게 잘 적응하느냐가 매우 중요한 것 같다고 했다. 본인의 경험담이다. 그의 목소리는 확신에 차있는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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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국 Texas A&M University 에서 박사학위를 받고 

 
대학은 미국 텍사스 에이앤엠 대학(Texas A&M University)를 다녔습니다. 99년에 석사를 마치고, 2002년에 박사를 받았는데 한 5년 반 걸렸습니다. 학위논문은 인간의 움직임을 수행하는 여러 가지 신체기능 <효과기의 독립성(Effector Independence)> 즉, 신체 사지의 독립성을 통하여 운동기능의 학습과 기억구조를 규명하는 것이었습니다.

 

석사, 박사학위를 하면서 연구조교를 했습니다. 석사 1학기 마치고 연구조교를 하면서 등록금도 감면되고, 약간의 봉급도 나왔습니다. 연구조교는 주로 실험실에서 실험하는 연구를 수행하는데 교수님의 조교역할 겸 실험을 같이 하는 것입니다.

 

요즘의 대학교수는 영어로 강의를 하지 않으면 아니 되는 것 같은데, 어학연수도 없이 바로 석 박사학위를 한 것을 보면 어떻게 그렇게 영어가 빨리 되었는지, 물론 학교 다닐 때 외국학생들과 많이 어울렸다고 하더라도.

 

저는 그렇게 어렵지 않았습니다. 제가 갔을 때 저의 학과의 학부생을 포함해서 약 2천명이 되었는데 외국학생이 저 혼자였습니다. 체육학과로는 유학을 잘 가지 않아서인지 외국학생이 저 혼자이다가 보니까 죽기살기로 해야 하니까요. 좋은 친구들, 좋은 지도 교수님을 만났지요. 자연스럽게 배우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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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승과 함께 기념촬영을 하고있는 박교수

그저 좋은 스승, 좋은 이웃을 만난 것이 대단한 행운이었다고 겸손해 하는 박교수,

그의 생각 속에는 항상 인간의 뇌, 인간의 동작 등이 베어 있는 듯 하다. 좀 더 학문에 관련된 말씀을 해주시지요.

 

아리조나 주립대학교에서 연구원으로 고용되어 2년간 일을 했습니다. 연구원이 되면 미국 정부로부터 돈이 나오기 때문에 주로 연구를 맡았지요. 제가 지금 하고 있는 것과도 연관이 되는 것인데요, 파킨슨병 환자들은 뇌에 문제가 있어서 유전이 되는 것인데, 걸리게 되면 가장 처음으로 나타나는 것이 손 떨림 현상과 보행이 더뎌지고 인지능력이 떨어지는 것인데 이런 것들을 주로 연구하는 것이지요.

두 가지 목적이 있습니다. 첫째는 뇌가 운동을 할 때 어떤 기능을 하는지 그런 것을 규명하는 것이고, 그리고 의사들과 치료의 효용성이라던가 기초를 연구하는 것이지요. 요즘에는 체육학과가 엘리트 스포츠가 아니라 파킨슨병 환자들과 공동 연구를 하는 것과 같이 단순한 스포츠와는 다릅니다. 저는 뇌에 관한 연구를 하는데 특히 소뇌의 역할이 매우 중요하기 때문에 이를 연구하고 있습니다.

 

박교수는 석사를 마치고 겨울 방학 중에 바로 결혼을 하고 함께 미국으로 들어갔다고 했다. 부인께서 고생을 많이 하셨을 텐데, 고려대로 오게 된 계기라고나 할까 함께 들려주시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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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망중한을 즐기고 있는 박교수 부부

, 그렇지요. 요즈음은 차도 있고, 다들 영어도 잘 하고 하니까 옛날과는 다르지만 제 아내가 많이 도와주었습니다.

제가 아리조나 대학에서 연구원으로 1년 반 근무하고 있을 때 고려대에서 제가 연구하는 전공분야의 교수채용 공고가 났어요. 저는 원래 미국에서 공부하고 교수하려고 작정을 하고 갔었기 때문에 타 대학교의 모집공고에는 별로 관심이 없었는데 모교에서 모집공고가 나니까 흥미가 생겼고, 5월말까지 지원을 해야 하는데 한번 해보자고 해서 지원을 했습니다. 1차 심사에서 통과되고 2차에서는 3배수로 뽑혔고, 한국에 와서 인터뷰도 하고 선생님들과 대학원생들 앞에서 영어로 공개강의를 했습니다. 후보 세분의 선생님들이 나와서 테스트를 받는 것이지요. 그 때가 어윤대 총장이셨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주로 해외의 유명 학회지에 발표한 논문이 많은 교수를 우선시했던 것 같아요.

 

물론 영어강의나 기타 여러 다른 심사대상이 있었겠지만, 논문을 어느 정도나 발표했기에 선임이 된 것인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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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의 주임교수는 연세가 좀 드신 분이었는데 미국에서는 나이 든 교수 밑에는 학생들이 별로 없어요. 그리고 대학원생들의 논문연구는 정부지원이 없으면 잘 하려고 하지를 않습니다. 저는 교수님하고 단 둘이다 보니 수시로 연구에 대해서 상의를 해왔고 같이 연구를 해보자 해서 논문을 쓰곤 했지요. 제 딴에 연구를 열심히 한다고 했는데 결과가 잘 나오던 군요. 일반적으로 박사학위 하면서 논문을 두서너 편 쓰는 것이 보통인데 저는 지도교수님하고 항상 붙어있다가 보니까 여덟 편이나 쓰게 되었습니다. 많이 쓴 편이지요.

 

논문은 주로 어디에 발표를 합니까? 무슨 심사기준 같은 것이 있어서 통과되는 것이 아닙니까?

 

주로 외국저널의 체육학이나 운동학 또는 뇌와 관련된 학회지에 발표합니다. 논

문 심사를 하고 내용적인 면과 형식적인 면을 면밀히 검토한 이후에 실리게 됩니다.

포닥을 하면서 총 열두서너 편이 된 것 같았습니다. 다른 분들은 보통 두 세편 밖

에 안되고, 저는 처음 학교에 갔을 때는 시스템도 모르고 헤매다 보니, 늘 지도교수

에게 물어볼 수 밖에 없었고 이것이 학습에 도움이 되었지요. 그래서인지 채용 테

스트에서 영어강의 평가 등이 제가 톱으로 뽑혔습니다. 나중에 알아보니까 보통 교

수를 채용하게 되면 일곱 분이 심사를 하게 된다고 하더군요. 보통 5대2 정도로 결

정이 되는데 저는 7명 전원이 만장일치로 평가를 해주었습니다. 제가 서른네 살 때였으니까 어떻게 보면 빠른 셈이었지요. 그래서 2005년도 3월에 고려대에 들어오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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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구실에서의 박교수

보통 외국에서 오래 살다가 귀국문제가 나오면 집사람과의 갈등이 생길 법도 한데 별 문제는 없었는지 궁금하였으나 오히려 박교수의 아내는 한국으로 돌아오는 것을 좋아했다고 했다. 어르신들도 이 곳에 계시고 또 모교의 교수로 오는 것은 무엇보다 좋은 기회라고 적극 찬성하였다는 것이다.

귀국한지가 벌써 3년 반이 다 되어간다고 한다. 강의하는 내용은 주로 어떤 것인가요?

 

인간의 운동학습, 운동심리, 인간 운동의 신경생리학 등 요즈음에는 연구에 학문의 구분이 없습니다. 공대, 의대. 심리학과와 다 연결되어있습니다. 학교도 개의치 않습니다. 제가 고려대 교수이면서 현재 연세대 세브란스 병원에 뇌졸증 환자들을 연구하고 실험하기 위해서 실험기자재를 일부 갔다 놓았습니다 만은 지금은 자기 학교만을 고집하는 시대가 아닙니다. 연구에 필요하다면 지금은 누구와도 서로 공동작업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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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하고 또 강의도 해야 하는데 시간을 어떻게 배분하십니까?

강의는 일주일에 2과목으로 여섯 시간 밖에 안됩니다. 학교당국에서 지원을 해주고 있는 셈이지요. 교수들로 하여금 국내뿐만 아니라 해외 연구를 독려하여 많은 논문을 발표하라는 그런 목적도 있겠지요. 이제는 교수들이 국내 평가만으로 만족하는 것은 전혀 아니 되기 때문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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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교수내외와 아이들과 함께한 어느날

긴 시간 동안 고향 이야기와 학교 이야기를 거듭하면서 울릉도에서 태어나 학문의 길로 힘차게 달리고 있는, 자신에 가득 찬 박교수의 모습에 절로 머리가 숙여진다. 아내와 자녀 두 명을 두고 있는 단란한 가정의 장으로서 학교의 스승으로서 그의 앞날은 밝고 희망에 차 보인다.

 

앞으로도 지금 연구하시는 쪽으로 계속하실 건가요?

 

최근 과학의 큰 화두가 뇌입니다. 뇌와 관련된 연구가 전 세계의 트렌드입니다. 저 같은 경우에도 신경과학이라고 하는 것인데, 인간의 움직이는 것, 말하는 것 등도 모두 인간의 뇌에 의해서 움직이는 것임으로 이제는 실제적으로 환자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것, 실제적으로 소외된 사람들에게 혜택을 줄 수 있는 것에 관심을 갖고 신경을 쓰고 고민하고 있습니다. 두 가지 목적입니다, 신경과학 쪽에 연구를 함으로서 그런 결과를 통해서 이런 사람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것에 특히 관심을 갖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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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암동 고려대학교의 오후, 안암 캠퍼스에는 박진훈 교수가 긴 호흡으로 연구와 강의를 하고 있다. 연구실로 돌아가는 그의 뒷모습에 그가 진정으로 바라는 소외된 사람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날이 오버랩 되면서 왠지 발걸음이 가벼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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