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경 울릉인 출신 중에서 경제계, 학계 그리고 정치계까지 자기만의 독특한 영역을 개척하여
이 땅에 그의 이름 석자를 새겼을 뿐만 아니라 울릉도의 기상까지 높이고, 드라마틱한 삶을 살아 온
“인간 이석준(49년 천부)”을 만나 봄으로써, 우리가 살아 가야 할 삶의 의미를 재 조명해 볼 수 있는
좋은 기회임을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우리 향우에게, 특히 젊은 향우들에게 큰 귀감이 될 것으로 확신하며
그의 일터를 찾아가 보았습니다.
Q: 오랜만입니다. 요즈음 한창 바쁘실텐데, 향우들의 간청도 있고 하여 이렇게 불쑥 찾아왔습니다. 건강은 좋으시죠?
A: 예, 열심히 하고있습니다. 아무 실속도 없이 공연히 분주하기만 합니다.
Q: 옛날 이야기 한번 여쭈어 봐야 되겠는데 도대체 학교는 어디까지 다녔으며 울릉도에서 몇 살에 나오셨는지요? 왜냐하면 대학교수생활도 현재 하고있으니까 참으로 궁금한 게 많습니다.
A: 나리동에서 태어나 3살 때 천부로 내려왔지요. 천부국민학교 졸업하고 도동으로 나와서 중학교를 다녔지요. 그런데 거의 절반은 결석을 했어요. 학교는 뭐 잘 나가지도 못하고……..
Q: 학교를 잘 나가질 못 했다니요? 거의 절반이 결석이라니 설명 좀 해주시지요.
A: 중학교 2학년 때부터 오징어를 잡아서 생활도 해야 하고, 또 학교 다니다가 형편이 안되니까 이 친구 저 친구집에 얹혀서 몇 달씩이나 있다가, 특히 홍범조 공부방에도 가서 몇 달 있다가, 정태환의 부친이 우체국장을 할 때였는데 그 쪽에서도 신세를 지고, 뭐 그런 생활이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오징어가 많이 잡히면 일단, 돈벌이부터 해야 했으니까요.
Q: 오징어 나면 오징어 잡이 나가고, 학교도 다니고 하였으니 어릴적부터 돈에 대해서는 뼈에 사무친 것이 있었다고 봐야 하겠군요. 중학교 때 공부는 역시 잘했습니까?
A: 천부국민학교 때에는 늘 일등을 하곤 했었는데, 중학교 와서는 공부를 못했습니다. 할 수가 있었나요? 그래도 돈에 대한 것은 어릴 때부터 관심이 많았지요. 내가 벌어서 공부를 하고 해야 했으니까요.
Q:그래, 몇 살에 울릉도를 나왔습니까? 벌은 돈도 조금은 가지고 나왔나요?
A: 열여덟 살 때 였지요. 달랑 오징어 다섯 축을 들고 나왔습니다. 여기저기 기웃거리다 보니 우연히 해군 하사관 모집 공고가 보이길래 응시를 해서 덜렁 합격을 했습니다. 그런데 이 군대생활이 참으로 편하더군요. 하얀 밥도 주지요, 옷도 주지요. 정말 울릉도의 생활과 비교하면 이건 천국과 마찬가지였지요. 나리동에서 나무도 패고, 지게도 지고, 오징어도 잡고 하다가 막상 군대에 들어오니까 완전히 살판이 난 겁니다. 배타는 것이 아주 편하니까 그래서 이런저런 책을 닥치는 데로 읽었고……
Q: 그 때는 나이도 어렸을터인데 주로 무슨 쪽으로 관심을 갖고 책을 읽었습니까?
A: 배를 한번 타면 동해, 서해 등으로 장기간 다니니까 시간 여유가 꽤 있었죠. 마침, 그 당시에 마산고등학교를 나와서 서울 문리대 3학년에 다니다가 제 밑에 들어 온 부하가 한명 있었는데 나이는 저보다 한 살 많았고 고등학교 때의 책 한 보따리를 함정에 가져 왔더라구요.
Q: 왜 고등학교 책을 가져왔나요? 특별히 관심이라도 있었는지…..
A: 날 가르켜 주려고 가져온 게죠. 평소에 그 친구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보니 서로 통하게 되었고 그 친구 말이 좋은 머리를 썩히면 되겠느냐, 한번 해봐라 라고 하면서 공부를 같이 하자고 하더라구요. 결국, 그 친구가 제 선생인 셈이었지요. 그리고 제게 많은 용기를 주었습니다. 그래서 한 1년간 공부하고 바로 고등학교 검정고시에 합격을 했습니다.
Q: 군대생활은 얼마나 하셨는지요? 그 이후에 어떻게 하셨는지요?
A: 1976년도에 월남에 갔습니다. 사이공에 있었는데 돈도 많이 주더군요. 그때 갈등이 꽤나 있었습니다. 군대생활을 더 하면 소위 임관하는 케이스도 있었고, 장기 하사도 있었고 그랬지요. 제 동기생만 해도 약 20명이 소위 임관을 했으니까요. 그래 눌러 앉느냐, 나가느냐 고민을 좀 했습니다. 그 전에 대학시험을 이미 보고 합격을 해놓고 있던 터였는데 월남에서 돈을 벌어서 학교에 들어갔습니다.
Q: 사회생활이 시작된 셈인데 젊었을 때를 회상 한번 해주시지요.
A: 처음에는 대농 섬유파트에 입사를 했습니다. 한 2년간 무역파트에서 일했습니다. 소요량, 네고, 자재, 관세환급 등 섬유전반에 걸쳐서 일을 하다가 보니 제가 아마 성실하게 보였던 모양입니다. 처음에 들어가서 관세환급 업무를 했는데 정말이지 열심히 했습니다. 계속 사무실에서 잠도 자고 정말 열심히 일했습니다. 내 파트 뿐만 아니라 다른 파트의 과장들이 일을 자꾸 도와달라고 하더군요. 짜증도 안 부리고 열심히 해주니까 일을 자꾸 주더군요. 그래서 또 새로운 일을 배우게 되고 또 새로운 일을 하다가 보니까 길이 자꾸 트이더군요. 나중에 해외영업도 시키더라구요.
Q: 영업하실 때 재미나는 이야기 좀 들려주실까요?
A: 그 당시에는 한국의 대부분 무역업체들이, 미국업체의 오더라고 해도 일본업체가 주문을 받고 한국에는 재하청을 줄 당시였는데, 미국 K-MART사의 주문이었는데 납기가 짧아서 영 찜찜하더군요. 대농이 어떻게 좀 해줄 수 없겠느냐고 애원을 하더군요. 이런 저런 궁리를 해보니까 잘 하면 되겠더라구요. 요리조리 소요량, 생산 스케쥴 등을 검토하다가 결국 상사에게 주문을 받자고 제의를 했습니다. 약간은 모험이었으나 마진이 좋은 편이어서 제가 한번 해보기로 했습니다. 그 때 바이어와 민속촌에 놀러가기로 약속이 되어있었는데 어디 좀 다녀올 때가 급히 있어서 다음에 가자고 약속을 미루고서는 즉시 하청공장에 내려갔습니다. 하청공장에 사과 서너 박스를 들고 가서 공장에서 작업지휘를 하고있는데 미국에서 온 바이어도 마땅히 할 일도 없고 하니까 하청공장에 온겁니다. 급한 일로 지방에 간다 던 내가 공장에 와 있으니까 그 친구가 정말 놀래더군요. 결국, 깔끔하게 마무리해주었고 이 일로 인해 이 바이어와 돈독한 관계가 되어서 나중에 부장이 사인을 해도 이석준 사인을 받아오지 않으면 안된다라고 할 정도였으니까요.
딸 이승미의 결혼식장에서
Q: 대농에서는 몇 년이나 일했는지요?
A: 한 2년 일했습니다. 과장대리 승진도 참 빨랐습니다. 그러다 보니까 시기하는 사람도 생기도 제가 열심히 일하는 것이 조금 알려지니까 하청공장에서 자꾸 스카우트 제의가 오더라구요. 뚝섬에 있던 진성섬유라는 회사의 전무이사로 들어갔습니다.
Q: 그러니까, 과장대리에서 바로 전무로 들어간 셈이군요.
A: 이익 배분조건을 3대 7로 하기로 하고 들어갔습니다. K-MART의 바이어가 무조건 백만불을 밀어줄 테니까 한번 해 보라고 해서 시작을 했습니다. 대농에서 사귀었던 그 바이어가 밀어 준 덕분으로 회사를 제법 키웠습니다. 커지니까 당초의 약속이 잘 안 지켜지고 해서 그만 두었습니다. 그때 제가 총각 때니까 자꾸 자기 처제와 결혼을 하면 어떻겠냐는 등 신경을 곤두 세우게 하고 자금관계도 매끄럽게 정리를 해주지 못하고 하여 그만 두고 나와서 처음으로 연일상사라는 내 이름의 사무실을 처음 차렸습니다. 많이 키웠습니다. 상봉동에 큰 공장을 가지고 있었는데 절친한 친구부친의 어음배서를 해주다가 나가 떨어졌습니다.
Q: 그러면, 상봉터미널 땅을 다 날려 버렸다는 이야기이네요.
A: 예, 다 털어버린 셈이지요. 막 결혼하였을 텐데… 기분도 착잡하고 하여 미국에 갔습니다. 한 2년간 워싱턴에서 돈도 없이 이런저런 일도 하고 고생도 좀 하다가 케미칼 계통의 아이템을 갖고 들어왔습니다. 그래서 제약회사에 납품도 좀 하고 해서 돈도 조금 만지게 되었지요.
민주당수련회 특별강연
Q: 주식관계는 언제부터 관심을 갖게 되었습니까?
A: 조금이나마 돈이 모이자 사금융 쪽으로 관심을 갖게 되었습니다. 회사채, 채권 등에 무척 관심이 많아서 그 때부터 주식에도 약간 관심이 있었던 셈이지요. 학교 공부도 병행을 했습니다. 고려대학교 공과대학에 들어가서 공부도 하고, 다시 언론대학에도 들어갔습니다. 저녁에 대학원에 다니면서 동부그룹에서 일을 하게 되었구요. 돈도 좀 있고 하니까 고문으로 들어갔습니다. 실적에 따라 마진을 먹는 것인데요. 금융기관은 돈만 많이 벌어주면 됩니다. 많이 벌어 올 때는 한 달에 1억 4천만원까지 가져온 적도 있습니다.
Q: 그런 와중에도 공부를 계속했다는 이야기이군요. 앞으로도 공부는 계속할 것인가요?
A: 물론입니다. ‘태극메일’ 비즈니스가 어느 정도 안정이 되고 기회가 오면 농대에가서 수목이나 동물관계도 공부하고 싶고, 마지막으로 공부를 하고싶은 것은 신학입니다. 제 경우에는 거의 쉰살이 다 되어서 박사학위를 받았으니까, 나는 공부라는 것은 평생을 해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지금은 패러다임이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우선 돈 벌어놓고 공부는 평생 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최근에는 서울대 공대 대학원도 수료도 했습니다.
롯데호텔에서 연설하고 있는 이석준 박사
Q: 참으로 대단하시군요. 학위도 늦게 따셨는데 학교강의는 언제부터 했습니까?
A: 96년쯤 시작했으니까 약 8년 다 되어갑니다. 제가 보직을 갖고 교수생활만 한 것이 아니고 사업을 병행을 했으니까 학생들에게 꼭 필요한 실물경제를 중심으로 강의를 하지요. 아시다시피 공부도 검정고시에서 시작했고, 바닥부터 시작해서 돈도 벌어보았고, 정말이지 생생한 실물경제인 게지요. 어릴 때부터 산에 가서 나무도 해보고, 오징어도 잡아보았고 이런 경험이 토대가 되니까 학생들에게는 참된 실물경제가 정말 가슴에 와 닿는 것이겠지요.
Q: 그렇다면 학회 관련 일도 꽤나 하실텐데…..
A: 그렇습니다. 한국에는 경영학회와 서비스경영학회가 있는데 제가 서비스경영학회 부회장을 맡아서, 교수들이 약 5백명이나 됩니다만은, 학위 논문 심사도 하고 자주 세미나도 갖곤 합니다. 이제 4월부터 다시 강의를 시작하려고 합니다. 고대는 물론이고 경기대학교, 서강대학교 등에도 특강을 나가고 있습니다.
향우회 임원회의에서
Q: 현재 운영하고 계시는 사업관계에 대해서도 한 말씀 해주시지요.
A: 제가 경영하고 있는 두여아이티(주)는 IT산업입니다. 간단히 말씀을 드리자면 한글 이메일 개발 업체입니다. 그간 많은 시행착오 끝에 이제 거의 다 마무리가 되어서 며칠 전에 과학부에서 4천만원의 주문을 받아서 이제 시작이 되었습니다. 전 세계의 웹이 영어로 된 것인데 반하여 저희는 원천기술을 한글로 만들었습니다. 지금 제가 IT 한다고 하면 웃을지도 모르겠으나 수개월 전에 저희 회사 제품을, 제가 잘 알고있는 KAIST의 어느 교수분을 통하여 7천만원에 견적을 넣었는데 이것이 거절이 되었어요. 나는 왜 거절이 되었는지 자세하게 몰랐으나 무언가 문제가 있다고 보았지요. 모든 경쟁사의 1등부터 3등까지의 기능을 뽑아 보니까 우리 것보다 좋은 기능이 많이 있더라구요. 그래서 3개월동안 모든 판매업무를 중단하고 경쟁사의 좋은 점을 전부 보완했죠. 그래서 완벽한 제품을 만들어서 이번에 납품이 되었습니다. 부산 지하철관리공단에도 직원이 약 3,500명이나 있는데 아마 저희 회사 이메일로 전부 바뀌게 될 것입니다.
Q: 종전에 운영하시던 '한글로닷컴'과는 어떤 연관성이 있는지요?
A: 제가 한글로닷컴에 30억원을 투자했다가 결국 인수를 한 셈이 되었습니다. 추가 개발비다 운영비다 해서 총 40억원이 투자되었습니다. 지금까지는 계속 투자만 한 셈이지요. 결국 현재의 두여아이티의 모체라고 보면 됩니다.
Q: 한글 이메일이라는 것이 도대체 어떤 것입니까?
A: 아시다시피 현재의 이메일은 보통 sjlee@hanmail.net 의 형태를 취하고 있습니다. 재경울릉향우회의 홈페이지가 ullungdo.org이지요. 이메일은 sjlee@ullungdo.org로 가능한 것이지요. 이게 영어로 되어있어서 불편할 뿐 만 아니라 시간도 꽤나 걸리지요. 향우회 홈페이지가 울릉인.kr 도 있지요? 이를 한글로 된 ‘이석준@울릉인.kr’로 한다면 얼마나 편리할까요? 현재 나와있는 한글 이메일은 영어를 한글로 단순히 번역만 한 것이어서 원천적으로 한글기술이 아닙니다. 저희 것은 세계에서 하나뿐인 이메일 시스템입니다. 예를 더 든다면 이석준@사랑합니다. 이석준@교수 이석준@선생님 등등 @뒤의 것은 도메인인데 도메인은 정보통신부에서 하는 것이고 앞의 것은 우리가 자국어로 만든 것입니다. 재경울릉향우회에 ‘울릉인.kr’을 등록하여 사용하게 되면 홈페이지 찾기도 아주 간단해서 좋고 이메일도 ‘이석준@울릉인.kr’ ‘홍상표@울릉인.kr’, 등등으로 되는 것입니다. 이제 조금 있으면 정통부나 대 기업체 등에서 저희 제품을 깔게 될 것입니다. 개인의 경우에는 아직 시간이 필요하나 앞으로는 포탈사이트에서 저의 것을 구입하여 보급이 가능할 것입니다.
Q: 그 참 편리하겠군요. 말씀하신 데로 큰 수요가 있었으면 합니다.
A: 우리 '두여아이티'에서 한글로 된 이 메일을 재경울릉향우회에 무상으로 제공하겠습니다. 향우들이 한글로 된 이 메일계정을 다 가지게 되는 셈이지요. 직접 해보셔야 알 것 아닙니까?
향우회 임원회의에서
Q: 감사합니다. 오늘 좋은 선물도 주셨고 사업도 계속 번창하기를 바랍니다.
A: 이제 납품도 정식으로 이루어지고 했으니 계속 업그레이드를 해가면서 이 사업이 본 궤도에 올라가면 엄청난 큰 비즈니스가 될 것입니다. 이제 곧 전국적으로 파급효과가 대단해질 것입니다. 한국의 빌 게이츠가 되는 것이 제 꿈이지요. 분명히 잘 될 것입니다. 머지않아 일본과 중국에서도 시작될 것이고 이렇게 되면 그야말로 게임은 끝나는 것이지요. 전세계에서 우리만 가지고 있는 독특한 사업이니 만큼 정말 잘 되리라고 확신합니다.
Q: 가족관계를 여쭈어 보아도 될런지요?
A: 집사람(김봉희)은 숙명여대 식품영양학과를 나와서 직장생활을 하다가 현재는 가사일에만 전념을 하고 있습니다. 큰애는 이승환(27세), 서울대경제과 졸업하여, 현재 KAL에 근무하고 있고, 작은애 이승미(26세)는 대학교 4학년 재학중이며 남편이 미국 컬럼비아 대학교에서 교수를 하고있으며 결혼하여 현재 미국에 유학 중입니다.
박사학위 취득기념-왼쪽부터 부인 김봉희여사, 딸 이승미, 아들 이승환, 이석준 박사
Q: 몇 년 전인가 울릉도의 나이 드신 어르신 들과 어린 학생들을 여러 차례 초청해서 큰 기쁨을 주신 걸로 알고 있습니다 만은……. 경비도 엄청 났을텐데요?
A: 예, 오래되었습니다. 제가 늘 어렸을 적 생각을 해보곤 하니까 무언가를 하고 싶더군요, 천부국민학교생, 울릉종고생, 어르신 분들을 두 차례 모셔 가지고 육지 구경을 시켜드렸지요. 사실 육지구경 한번 나오는 것도 돈이 들지않습니까? 마음은 있어도 육지로 구경 나오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었지요. 시골에 계시는 분들이지 않습니까? 즐거움이 되었으면 그것으로 좋은 것이지요.
워커힐 아파트 입주자 대표로서도 활동하고있는 이석준 부회장
Q: 워커힐아파트의 입주자대표회의 회장까지 하고 계신다고요? 그리고 열린우리당에도 관여하시고요.
A:예 이제 바로 3000억원 이상의 리모델 공사를 시작할 것입니다. 주위에서 선거가 치열했습니다만은 입주자들의 저를 추대해 주어서 봉사를 해주고 있습니다. 열린우리당의 광진구 지구당위원장을 하고있습니다. 열린우리당 중앙회 상임위원도 겸하고 있습니다 만은….어떻게 하다가 보니 그렇게 되었네요. 학교관계로 인해 일을 하다가 보니까 자연스럽게 정치관계 사람과도 많은 친교가 있었고 가끔 초청연사로 강의를 하다 보니까 정치와도 자연스레 연관이 맺어진 것 같군요.
Q: 참으로 많은 일을 하고 계시는군요. IT 사업과 대학교 교수, 열린우리당 광진 지구당위원장, 열린우리당 상무위원, 워커힐아파트 입주자대표회장 등 학계, 재계, 정계를 망라한 활동이신데… 고향에 다녀 오기가 무척 어렵겠네요.
A: 간혹 다녀 옵니다. 최근에 다녀 온 것이 한 3년 정도 되었나요? 그야말로 무공해 고향인데 나이 들면 고향에 가서 살아야겠다고 생각은 하고있는데, 그건 추후의 일이고 우선 이곳에서 열심히 해야지요. 시간이 나면 자주 찾아 가봐야지요.
Q: 고향 후배들에게 한 말씀 해주시지요. 정말이지 타산지석이 될 수 있을 텐데….
A: 제가 여섯 살 때 아버지께서 돌아가시고, 돈이 없어 공부도 못하고 갖은 고생 다하면서 열심히 살아왔는데 저를 보시면 아시겠지만 돈이 없어서 사업 못 했다던가, 아니면 공부를 못했다 등등의 이야기를 제 앞에 와서는 하기 힘들 겁니다. 오해는 하지 마십시오. 핑계대지 말고 도전해야 한다는 뜻이니까요. 끊임없이 도전을 해야지요. 나이가 많건 적건 운동도 열심히 해서 건강해 져야 되고, 생각도 항상 싱싱해야지요.
Q: 고향에 기부도 많이 하시고 대학교에 장학금 등 기부를 많이 하신다고 소문이 자자하시던데, 구체적으로 말씀 좀 해주실 수 있습니까?
A: 구체적인 것은 좀 그렇고요. 별로 자랑할 것도 없지만, 조금은 하는 편입니다. 제가 어려서 너무 힘들었던 기억이 나서인지 이런저런 장학금을 조금씩 하고있습니다. 이 정도로 하지요. 공연히 오해를 살 수도 있으니까요.
Q: 21세기를 바라보는 새로운 패러다임은?
A: 한마디로 21세기는 신지식 산업입니다. 변화를 두려워하면 아니 됩니다. 역사적으로 보면 약 2백년에 걸쳐서 패러다임이 크게 바뀌곤 하는데 약간의 이노베이션은 항상 있어왔지만 완전한 의식의 전환이 있어야 하는데 이것이 쉽게 바뀌어 지지가 않습니다. 이제 바뀌어야 합니다. 예를 들어서 주식도 그래요. 지금 외국인이 주식투자로 얻은 이익을 엄청나게 해외로 가져가고 있지않아요. 이를 크다란 금융의 댐으로 만들어서 모든 금융을 댐이라는 곳에 전부 수용해서, 예를 들어서 국민년금 같은 것을 과감히 풀어서 이를 최대한 활용해야 합니다. 이 국민년금을 금융댐에 넣어서 필요 시에 댐의 문을 열어주고, 닫고를 조정하는 금융시스템으로 바꿀 수 있다면 그렇게 해야지요. 생각이 바뀌지않으면 살아나갈 수가 없습니다.
Q: 긴 시간 감사합니다. 앞으로 고향을 위해서 좀 더 신경을 써주시고, 향우회를 위해서도 많은 힘을 보태어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A: 힘 닿는 데까지 애써 보겠습니다. 향우들을 위해서 무언가를 이야기할 이런 기회가 있다니 참으로 반갑군요. 모쪼록 재경울릉향우회가 날로 발전하기를 기대합니다.
< 주요 학력 > 경기대학교 경영대학원 석사학위 (1983년도)
고려대학교 공과대학원 석사학위 (1985년도)
고려대학교 언론대학원 언론학석사 학위(1988년도)
경기대학교 경영대학원 경영학박사(명예)(1992년도)
서울대학교 공과대학원 AIP과정 수료(1996년도)
< 주요 경력> 두여아이티(주) 대표이사
열린우리당 광진구 지구당위원장
고려대학교 외래 교수 (현재)
서비스경영학회 부회장 (현재)
동부그룹 경영고문 (현재)
< 회사소개 > 회 사 명 : 두여아이티(주) 대표이사 이석준 홈페이지 : www.dooyeoit.co.kr 주 소 : 서울시 서초구 서초동 1329-8 삼원빌딩 11층 전 화 : 02-3474-1302 상품명 : 한글 이메일주소 지원 “태극메일’ 웹에서 일본어, 중국어 지원 주요고객 : 한국과학기술평가원, 부산교통공단, 관세청, 영남이공대학, 등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