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 나이에도 불구하고, 많은 어려움을 극복하면서 반도체 제조에 필요한 장치인
“석영유리 가공” 제조에 20년 몸 담고 와신상담 끝에 마침내 자기 사업을 일궈낸 자랑스런
우리의 향우 구원수(57년 도동)사장의 일터를 찾아 가 보았습니다. 오로지 기술 하나만 있을 뿐,
무일푼임에도 불구하고 석영유리 제조라고 하는 굳은 집념 하나 만으로 인터넷공모를 통한
거액 증자 실현, 우량 기술기업 선정 등과 같이 우수한 벤처기업을 만들어 낸 것이기에
더 더욱이나 값진 교훈과 잔잔한 감동을 우리 향우들에게 주고있습니다.

Q: 상호가 한국쿼츠인데 쿼츠가 무슨 뜻입니까? A: 쿼츠[quartz]란? 석영[石英] (결정 형태로 산출되는 것은 수정) 유리라고 합니다. 일반유리와는 다르게 순도가 99.99%이며, 원료는 대부분 외국에서 수입하는데, 봉으로 된 것이나 판재, 관 들로 만들어진 여러 사이즈가 있고 이를 가공하여 반도체 관련업체 등에 납품을 하고있습니다.
- 현재 생산중인 석영 -
Q: 주로 어떤 곳에 쓰는 것인지요? A: 순도가 높고 고온분위기, 급열, 급냉, 약품에 강하기 때문에 반도체 제조에 꼭 필요한 재료라고 할 수 있죠. 반도체의 웨이프 등을 이 유리 그릇에 담아서 작업을 하는 것입니다. 조금 있다가 공장에 가보시면 알 수 있을 것입니다.
- 공장 내부 전경 -
Q: 구사장께서는 이 업계에 몇 년이나 종사를 하였는지요 ?
A: 그러니까 83년부터 시작한 셈입니다. 삼성전자가 한국반도체를 인수하면서 한국에 반도체가 본격화된 것인데 저도 대개 그때 즈음 이 업에 입문한 셈입니다. 그 당시에는 주로 미국에서 IC 등 원료를 가지고 와서 조립하는 정도였을 때니까요.
- 석영 가공 기계를 설명하는 구원수대표 -
Q: 학교는 어디에서 다녔던가요? 본인을 조금 소개해보시지요.
A: 출생년도 57년생이고 졸업회수도 57회입니다. 우산국민학교를 졸업했습니다. 49살입니다. 동기생으로는 진식이, 종욱이가 있습니다. 울릉중학교는 73년에 졸업했고, 중학교는 아마 26회 정도일 겁니다. 지금은 고인이 되셨지만 도동의 최장모씨가 저의 큰 매형입니다. 선친 성함은 구용복이고, 96년에 돌아가셨습니다. 홀어머님은 현재 대구에 계십니다.
Q: 중학교를 졸업하고 육지로 나오셨는데 자세히 말씀을 해보시지요. A: 박정희 대통령이 만든 학교인데 구미에 있는 금오공업고등학교로 입학했습니다. 중학교의 성적이 5%이내에 든 학생들이 추천을 받아 입학을 했는데 기숙사도 있고 등록금도 없었고, 참으로 좋았지요. 다만 조건이라면은 군대생활을 5년간 해야 한다는 의무조항이 있었습니다. 기계 판금 용접이 저의 전공이었습니다. 그 당시 모든 기자재를 해외에서 차관으로 들여와서 시설이 제일 좋았다고 들 하였습니다. 대통령이 만든 사립공고라도 행정부의 5-6개 부처의 차관들이 이사로 되어있고 학교 자금관계는 주로 국방부에서 돈을 대었기 때문에 졸업을 하고 입학 조건대로 각군의 요청 인원대로 해군에 들어갔습니다. 기술하사관으로 배치를 받았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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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조건대로 군대생활은 5년간 하였나요? A: 예, 함정생활 한 1년, 나머지는 남해근처의 특수부대에서 4년을 근무했습니다. 육상에서 기술관련 일을 주로 했습니다. 요즈음은 잠수함도 있고 하지만 그 당시에는 아주 극비 업무였는데 그곳에서 일을 했습니다. 요즘은 다 공개되어 극비라고 할 것도 없지만, 25살 때인가 만기 제대를 했습니다. 그리고 대학공부도 별로 하고싶은 생각도 없었고 바로 울릉도에 들어 갔습니다.
Q: 좋은 학교에서 공부를 해놓고선 왜 바로 울릉도로 들어갔습니까? A: 예, 81년 3월에 울릉도에 들어가서 독학으로 공무원시험 공부를 할까, 사시공부를 해볼까 이것저것 궁리를 해보다가 우연히 울릉수협에 들어가게 되어 한 1년간 있었습니다. 수협에서는 공제업무도 담당했고, 천부 출장소에서도 한 두어달 있곤 했습니다.
Q: 그 좋은 학교를 나왔는데 정부등에서 어떤 연락은 없었습니까?
A: 그 당시는 설립자인 박대통령도 서거하신 뒤라서 별도 연락은 없었고, 83년도에 이종열 교장선생님으로부터 연락이 있었습니다. 자기 친구가 반도체 관련사업을 하려고 하는데 기술자가 필요하다고, 그래서 제게 연락을 주셨습니다. 미국에 연수를 보내주겠다는 조건도 있고 하니 어떠냐고 하더군요. 앞으로 반도체 사업이 분명히 전망이 있을 것이다라는 판단이 서서 수협을 나왔습니다. 미국에도 보내준다고 해서 관심도 있고 하여 저하고 또 한 사람이 83년 12월에 미국에 들어 갔습니다. 아리조나주 휘닉스에서 연수를 했습니다. 약 8개월 정도 연수를 받았습니다. 프린스톤 대학교를 졸업하고 반도체 등의 사업을 하고 계시던 분인데 그 쪽에서 열심히 배웠습니다. 그리고 84년 7월말에 기계 선적하는 것을 보고 구미로 돌아 왔습니다. 주식회사 한국큐엠이라는 현재는 코스닥 상장업체로 성장한 주) 원익쿼츠라는 회사입니다 만은…..
Q: 그러니까 83년도에 미국에 들어가서 배운 것이 오늘 현재 하고있는 석영유리 사업이었던가요? 계속 했습니까? A: 네, 그렇습니다.. 85년도는 초창기 시작 단계이다 보니 제품도 잘 나오지 않고 매출도 당연히 좋지않고 하니까 저희 사장이 흥미를 잃었다고나 할까요 자꾸 안 하는 방향으로 몰고 가다가, 다른 사람과 50:50으로 동업으로 갔고, 결국 초창기의 사장은 지분을 전부 처분하고 말았지요. 그 당시 저도 정리하면서 나오려고 했는데 종업원 전원 인수 조건이어서 계속 근무를 했지요. 그래 창업 멤버들 몇 명이서 91년 2월까지 근무를 했습니다. 나올 때가 생산부 차장이었습니다.

Q: 한 8년간 한 우물만 파셨군요.
A: 그 당시에는 반도체 경기가 매우 좋을 때 였습니다. 그래 종전의 사장을 만나서 다시 한번 뜻이 있는 친구들 몇 명하고 같이 해보자고 하다가 여의치 않았습니다. 저는 이미 사표를 내었고, 새로운 자본주를 구하려고 여기저기 뛰어다녔지요. 지금 생각해보면, 오히려 그때 바로 적게나마 직접 창업을 하는 것이 훨씬 빠르고 좋았을 것 같아요. 일정한 규모를 갖추려고 하다가 보니까 자금이 많이 들고 시간도 걸리고 이게 쉽게 잘 안 되더라구요.

Q: 그래 석영유리 관련 생산업무는 끝을 내었나요?
A: 어쩔 수가 없더라구요. 집사람은 직장생활을 하고 있었고 저는 대구시 범어동, 법원 맞은 편에서 횟집을 했습니다. 회전식 생선 초밥집이었는데 제가 직접 회도 뜨고 했습니다. 91년 가을에 큰 매형이 교통사고로 돌아가시고 해서 매우 어수선할 때 였습니다. 처음에는 조금 되는가 싶더니 이게 잘 되지를 않아요. 결국 1년 반 만에 1억원 고스란히 까먹고 말았습니다. 95년 10월 쯤이었는데 집사람이 벌어놓은 것까지 그냥 다 날리고 말았지요..
Q: 횟집까지 하셨다구요? 직장생활 하다가 전업을 한다는 것이 그 정말 쉬운 일이 아니지요.. 그래서 다시 도전을 한 것입니까? 엔지니어에 대한 꿈을 버리지않고 말입니다
. A: 뭐 선택의 여지가 없었습니다. 또 이쪽으로 관심을 갖고 이사람 저 사람을 만나서 이걸 다시 하려고 뛰어다녔습니다. 마침, 달성공단에 양산 도금을 하는 사람이 돈도 좀 있다고 하여 선이 닿아서 하기로 했습니다. 기술지분 25%을 약속을 받고 시작을 했습니다. 마침 양산공장의 빈 공장이 있었습니다. 95년도에 시작했습니다. 상황은 별로 좋지않았습니다. 그 쪽 사장이 한 10억원 정도 들여서 시작을 했지요. 그런데 사장이 당초의 약속을 잘 이행 안하고 1년 정도하고 나니까, 내 위에다가 자기네 사람을 넣고 나 혼자만 빼려고 하는지 고립 시키려고 하더라구요. 결국 자기들이 업무를 알 때까지 날 이용해먹은 셈이지요.
Q: 계속 석영유리 일이었던가요? A: 그렇습니다. 계속 석영유리지요. 97년도부터 이런저런 시비가 있고 하길래 마음을 굳혀서 97년 말에 그만 두기로 했습니다. 내 밑에서 일하던 멤버들에게는 조금 기다리고 있으라고 해놓고서는 방향을 천안, 수원쪽으로 돌렸습니다. 그래서 송탄에 임대공장을 빌려서 시작했습니다. 직원 7,8명 정도로 스타트를 했습니다.
Q: 이곳으로는 언제 오셨는지요?
A: 97년도에 평택으로 올라왔습니다. IMF가 터지기 일주일 전에 창업을 했습니다. 송탄에서 임대공장을 하고있다가 2000년도에 공장을 지어 현재 이곳으로 왔습니다. 꼭 5년이 되었습니다. 공장 짓는데 힘이 들었습니다 만은 운이 좋아서 인터넷공모를 통해서 9억원을 공모를 했지요. 아직 주주들에게 큰 배당은 못하고있습니다 만은 빨리 성장을 해서 배당도 하고 해야죠.
- 한국쿼츠 공장 전경 -
Q: 종업원은 몇 명이나 되며 매출은 어느 정도 하시는지요? A: 종업원은 현재 40명 정도 됩니다. 요즘은 조금 줄었습니다. 매출은 작년까지는 년간 60억원 정도 하였는데 올해는 초반 성장세가 약간 둔한 것 같습니다. 열심히 해야지요.
Q: 납품거래처는 어느 정도나?
A: 삼성전자가 약 15%, 총 거래처가 몇 백개나 되니까 많습니다.
Q: 이해가 되지않는데 반도체 업체가 그렇게나 많습니까? A: 반도체를 직접 만드는 회사는 소수이지만, 장비업체 등을 포함하면 엄청 많습니다.
Q: 가족관계를 말씀 해주실까요?
A: 아내(이경숙, 남양)와 88년에 결혼을 하였고, 애들은 삼남매입니다. 큰딸이 혜인(중3), 둘째딸 혜민(중1), 막내인 아들 동균(6살)입니다. 모두 다 건강합니다.
- 단란한 가족 사진 -
Q: 이 큰 기계는 무엇을 하는 겁니까? 그리고 제품이나 원료 등 설명을 좀 해주시지요.
A: 이게 3차원 검사실입니다. 이것은 삼성에서 웨이프를 만들 때 이 장치를 그 전에는 FRP로 하다가 지금은 석영유리로 대체하여 합니다. 중국에도 하청공장이 있습니다. 직원들이 상주하고 있고 좀 단순한 제품은 중국에서 만들어 옵니다. 원자재는 대부분 수입하는데 이렇게 봉이나 판.관으로 각사이즈 별로 수입합니다. 이 석영판들은 규소에서 뽑아내는 데 순도가 많은 것을 녹여서 INGOT을 만든 것입니다. 1200도씨의 열에도 견딥니다.
- 석영 가공 기계 -
Q: 장시간 대단히 감사합니다. 참으로 멋진 사업을 하고 계시는 걸 보니 흐뭇합니다. 계속 사업이 번창하시기를 향우 여러분과 함께 기대합니다. 앞으로 향우회에도 많은 관심을 가져주시기 바랍니다.
A: 조그만 공장 하나 하는 것인데 이렇게까지 회장단께서 찾아주시니 부끄럽습니다. 앞으로 향우회가 발전이 되도록 저도 힘 닿는 데까지 돕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대담] 장소 : 2005년 3월 9일 (주)한국쿼츠 사장실 대담 : 구원수(57년 도동) (주)한국쿼츠 대표이사
참석 : 홍상표(재경울릉향우회 회장), 전국술(향우회 부회장), 이종수(향우회 부회장)
< 회사소개 > 회사명 : (주)한국쿼츠 대표이사 구원수 본사 및 공장 : 경기도 평택시 팽성읍 추팔리 391-4 . 031-651-5981 자본금 : 14억원정 공장 위치 및 규모 : 추팔산업 공단내 (대지 4,958.70㎡, 건평 1,988.55㎡) 종업원 : 50여명 홈페이지 : http://www.21cqc.co.kr
< 주요종목 > 반도체 생산에 필요한 석영제품 제조,
이화학기기 제조,
기타 석영제품 제조,
전자부품 조립 및 생산, 각호에 관련하는 부대사업 일체,
LCD 생산에 필요한 석영제품 제조,
LCD 제조장비 관련부품 제조,
반도체 제조장비 관련부품 제조
< 회사연혁 > 1997.11.14 법인 설립(설립자본금 50백만원, 대표이사 구원수 취임)
1999.09.11 ISO/KS A 9002 국제품질보증시스템 인증
2000.04.19 금융감독원 등록법인등록.
2001.01.31 공장등록 승인 (추팔지방산업단지) 공장부지면적 : 4,958.70㎡ / 제조시설면적 : 1304.10㎡ /
부대시설면적 : 684.45㎡
2001.08.03 벤처기업 기술성 및 사업성 적격판정(경기기술평가센터)
2001.08.27 벤처기업확인 (경기지방중소기업청), 2001.10.05 우량기술기업선정 (기술신용보증기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