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향에서 울릉종합고등학교까지 마치고 학업을 위해 출향, 토종 울릉도출신으로서 진취적이고 도전적인 자세로 대학원까지 마친 후 초일류 인재들의 집합소라고 일컫는 삼성전자의 프린터 사업부에서 발군의 실력을 발휘하여 일찍이 개성상인을 능가하는 상술을 터득한 우리의 멋쟁이 울릉인, 여기홍 향우(도동 63년)의 일터를 찾아 가 보았습니다. 여사장은 년간 350억원 전후의 매출을 차지하는 삼성전자 부품만 판매를 하고있을 뿐만 아니라 선인상가 1~2호점, 원효상가, 테크노마트, 인천점, 안산점 등 여섯개 직영점포를 운영하고있는 우리의 호프라고 아니할 수 없습니다. 지속적인 발전과 번영이 함께 하기를 간절히 희망합니다.

Q: 오랜만입니다. 전자제품 상가라서 그런지 복잡해 보이는군요?
A:.네.스페이스가 너무 작아서 사무실이고 무엇이곤 간에 막 쌓아두고 있습니다.
 
Q: 근자에 와서 특히 젊은 울릉향우들이 각 분야에서 열심히 일들을 하고있는 것은 짐작이 됩니다 만은 향우들 대부분이 구체적으로 어떤 일을 하고있는지 잘 모르고 있고 해서 다른 향우들에게 널리 알리기 위해…..이렇게 찾아왔습니다. 정말 젊으신데 여사장은 울릉도 어디에서 태어났습니까? 가족관계부터 말씀해주시지요.
A: 저의 부친 성함은 여경성입니다. 부친께서는 제가 어렸을 때 오징어도 잡으시고, 장사도 좀 하시고 그랬었지요. 옛 어르신들이 아마 울릉도 개척민으로 들어가셨나 봅니다. 옛날에는 울릉도에 온 양반들은 까께등에서 살았다고 들 하던데……하하 그냥 우스개 소리입니다. 작은 등대 밑입니다

. Q: 형제관계는 ?
A: 위로 누나가 셋이고 형님은 둘입니다. 선친께서는 재작년에 82세로 돌아가셨습니다. 매우 건강하셨는데 골반이 함몰되어서 고생하시다가 돌아가셨습니다.

Q: 여사장께서 63년생이시고, 도동이라면 친구들은 ?

A:
김태복(성원프레이트 대표), 정상권(파주소방서 차석) 등이 동기입니다. 울릉63동기 모임이 별도로 있습니다. 한 스무명정도 됩니다.

Q: 학교관계는?

A: 울릉초등(우산국민)학교, 울릉중학교, 울릉종합고등학교를 나왔습니다.

Q: 공부할 때 학비라던가 그런 어려운 적은 없었던가요?

A:
제가 중,고등학교에 다닐 때 누나들이 많이 도와주셨지요. 크게 어려운 적은 없었던 것 같습니다. 다만, 부친께서 별 경험도 없으시면서 오징어장사를 하였고 육지로 물건을 실어 보내면 떼어먹히는게 참으로 많았던 것 같습니다. 정말 순진하다고나 해야 할까요?
 
Q: 그 이후로 육지에 나왔던가요?
A:
그 당시 울릉종고에는 수산계와 인문계가 있었는데 저는 인문계를 택했고, 그래서 저는 부산수대의 수산경영학과에 입학을 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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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무실에서의 여기홍사장

  Q: 부산수대가 부산대학교와 합병되었던 것으로
  기억이 나는데요

  A: 예, 합병이 되었다가 다시 분리되었다고 하더군요. 그 당시만해도
  80학번까지는 서울상대보다 점수가 더욱 높았다고 하더군요. 등록    금은 전국적으로 제일 쌌구요.

  Q: 학교에 다닐 때는 특별한 취미라고 할까 특별히 한 것이
   있었던가요?

  A: 별로 없었습니다. 단지 학교에 다니면서 장사 경험을 조금 한 것  뿐입니다, 보리차 장사인데요. 옛날에는 아르바이트로 보리와 옥수수를 볶아 가지고 봉지에 넣어서 한 봉지에 천원씩에 팔았습니다. 여러 회사의 사무실에 다니면서 주로 팔기도 했고, 가끔은 교수님 밑에서 일도 좀 거들고 했습니다. 제가 어릴 때는 약간 힘들다 할 정도였다고 생각합니다 만은, 누님들에게서 사랑도 많이 받고 하여 실은 그렇게 힘든 줄도 몰랐습니다. 원래 울릉도 출신 사람들 자체가 도전적이고 진취적이고 보니 저의 20대 이후의 생활은 참으로 운이 좋았다고 봅니다.

Q: 학교를 졸업하고 바로 사회에 나왔습니까?
 A: 실은 수산고시를 보려고 열심히 준비를 하고 있었습니다.

Q: 일종의 수산 고등고시인 셈이군요
 A: 예, 그런 셈입니다. 수산고시는 매년 사람을 뽑는 것이 아니고 결원이 생기면 간혹 뽑고 하더라구요. 마침 시험도 없었고, 집안 형편도 그렇게 좋은 편도 아니었고 해서 시험공부는 포기하고 서울에 와서 코리아제록스에 입사를 했습니다. 그리고 서울에 와서 1년간 근무를 하다가, 아무리 해도 저는 부산이 본거지라고 판단을 하여 다시 부산에 내려가겠다고 회사에 요청을 해서 부산으로 발령을 받고 내려갔습니다. 부산에서 약 3년간 근무를 하다가 이제 다시 큰 물에서 놀아야겠다고 문득 생각이 들더군요. 그래 다시 올라가자라고 결심을 하고는 다시 올라왔습니다. 마침 삼성전자에 경력사원 공채모집이 있어서 응시를 했는데 과장대리로 합격을 했습니다.

 Q: 대단하시군요. 아무런 연고도 없이 그냥 도전한 셈이군요.
A: 신설된 파트였는데 91년도에 삼성전자 대리로 입사를 하게 되었습니다. 경력인정도 받았습니다. 마침 그때가 PC용 프린트를 처음 시작하였을 때인데, 초기제품을 시장에 런칭하는 것을 제가 했지요. 광고, 마케팅, 생산컨터롤 등 95년도에는 시장의 쉐어를 50%정도로 끌어올렸습니다. 정말 밤낮 없이 뛰었습니다. 몇 년을 열심히 하다가 보니 내 사업을 해야겠다고 생각이 들었고 그 이후에 쭉 연구에 몰두했습니다. 그리고 어언 7년간 있었습니다. 그때 당시에 정보기기 영업부 안에 프린트를 담담했었지요. 나올 때는 고참과장으로 나왔습니다 만은 실은 한국에서 꽤나 유명한 프린터업체에서 제안이 왔었습니다. 그 당시 그 회사가 한국시장 개척에 몹시 힘들어 했을 때였습니다. 한국 총판을 해볼 의향이 있느냐고 제안이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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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전자 재직시에 교육을 받던 어느날

Q:, 정말 좋은 찬스가 있었군요. 궁금합니다.

A: 선경유통, 코오롱을 제외하고 저에게 국내 판매권을 준다는 엄청난 제안이었습니다. 돈도 필요 없고 오로지 삼성전자 프린트를 취급하는 곳에 팔아만 달라는 것이였지요. 그래서 고민 고민하다가 그래 한번 해보자 하고 결심을 했습니다. 그 쪽 책임자와 저녁까지 술도 마시면서 합의를 했는데 제부서의 제일 높은 책임자가 이 사실을 알아가지고 바로 제 위의 상사에게 “니가 옷을 벗든지 아니면 여과장을 못 나가게 하든지 둘 중 하나를 선택해라” 는 압력이 있었다고 하더군요. 그런 상황까지 가니까 정말이지 갈등이 생기고 어쩔 수 없더라구요. 그래서 제가 삼성에게 제안을 했습니다. “타사에는 무조건 안가겠다. 그 대신에 내가 나와서 일을할테니까 도와달라, 삼성제품만 하겠다. “ 이렇게 거꾸로 제가 제안을 했습니다. 보통 한 회사 당 한 두개 품목만 주는데, 예를 들어서 모니터나 하드나 둘 중에 하나를 총판을 주는데 저는 프린트, 하드디스크, 주변기기 전부를 총판을 맡았습니다. 
 

Q: 삼성에서 외상으로 밀어주는 것인가요? 자금이 많이 들텐데요?

A:
아닙니다. 큰 돈도 없이 그냥 98년도 가을에 대지컴퓨터를 설립을 했습니다. 처음 초기에는 정말 열심히 일했습니다. 허리띠에 땀띠가 나올 정도로 손수레도 끌고 했지요.

Q: 그렇다면 삼성전자로부터 컴퓨터 주변기기, 모니터, 하드디스크, 등 부품을 구입하여 고객들에게 판매하는 것입니까? 결국 고객은 일반소비자가 아니군요?
 A: 그렇습니다. 메이커 없이 단순 조립을 하는 제조업체가 월간 십만대 정도 생산을 합니다. 부품종류는 크게는 다섯가지이며, 모델별로는 수 십가지 됩니다. 오로지 삼성으로부터 납품을 받아서 판매를 하고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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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취급하고있는 주요부품

Q: 그렇다면 옛날 삼성전자와의 거래처와는 별로 관계가 없네요? 그래도 어려운 점이 많았을 텐데요…

A: 예, 전혀 다른 거래처를 개발했어야 했지요. 어려운 점은 그리 많지는 않았습니다 만은 아무리 해도 외상이 많이 깔리니까 어렵다면 그 점이 약간은 어렵지요.

Q: 종업원은 몇 명이고, 영업소 등 회사 소개를 좀 해주시지요.

A: 처음에는 넷이 출발했습니다 만은 6년8개월이 지나면서 현재는 종업원이 30명 정도 되고 매장은 여섯 개입니다. 선인상가 1호 2호점, 원효상가, 테크노마트, 인천, 안산에 있습니다. 전부 도매를 하고있습니다. 전부 직영점입니다.

Q: 직영점을 제외하고 다른 곳에도 판매를 하고있습니까?

 A: 네 그렇습니다. 마우스나, 코드선 등과 같은 주변기기를 롯데마트나 이마트에 저희가 공급하고있습니다. 그리고 쇼핑몰인 롯데닷컴, 신세계닷컴 등에 제품을 공급해주고 있습니다. 인터넷 판매 전문 직원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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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월간 외형이 어느 정도가 되며 수익 등을 살짝 공개해보시지요?
 A: 월간 약 30억원정도 매출을 하고있습니다. 그러니까 년간 약 350억원 정도 판매를 하고있습니다. 마진은 겨우 굶어 죽지않을 정도로 줍니다.

Q: 일반관리비는? 수금관리에 문제는 없는지요?
 A: 월간 약 1억5천만원 정도 나갑니다. 수금은 외상이니까 약간은 리스크가 있습니다 만은 그렇게 위험한 경험이 별로 없습니다. 다만 지금까지 1억원 정도 떼인 적이 있습니다 만은 최근에 와서 별로 크게 위험하지는 않습니다.
 
Q: 각 매장은 위탁으로 운영이 되고있는지, 어떻게 운영되고 있나요?
A:
전부 직영입니다. 직영이 아니면 관리가 매우 어려워서 어쩔 수 없이 전부 직영체제로 운영하고있습니다. 나중에는 독립채산제로 할 수도 있겠지요.

Q: 타 상품도 하고있나요? 그리고 궁금한 것이 있습니다. 평균재고는 어느 정도 갖고 가시는지요?

A: 앞에서도 말씀드렸습니다 만은 100% 삼성제품만 합니다. 월간 재고유지로 가져 가는게 약 30억원 이상됩니다.

Q: 거래처에 외상을 밀어 준다든가 하는 관리는 소장들이 직접 하나요?

 A: 예, 그렇게 합니다. 특히 저희 회사에 삼성 출신들이 같이 모여서 하니까 그 점에 대해서는 잘 하고있습니다.
 
Q: 결혼은 하셨습니까? 가족 관계를 듣고싶습니다 만은……
 A: 집사람은 황선경(부친의 고향이 경남 사천)이며, 애들이 셋이나 됩니다, 큰 놈부터 석현이(10살), 석환이(7살), 막내가 석훈이(세살) 어떻게 아들만 셋이 되었습니다.

 
단란한 가족사진

Q: 오랜 시간 감사합니다. 울릉도 향우 중에 이렇게 젊고 잘 생긴 향우가 돈도 잘 버는 것을 보니까 정말이지 흐뭇합니다. 정말이지 대단합니다. 자랑이 아닐 수 없군요. 우리네 세대가 참으로 부끄럽습니다. 앞으로 향우회에 자주 나오시고 향우들도 많이 도와주십시오.

 A: 아무 것도 이루지 못한 저를 이렇게 찾아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앞으로 향우회를 위해서도 열심히 돕겠습니다. -------------

장소 및 일시 : 2005년 4월8일(금요일) 대지컴퓨터 사장실

대담자 : 대지컴퓨터 대표이사 여기홍, 재경울릉향우회 회장 홍상표 대담 종료후 오찬시 김태복 향우 동석함 [

회사] 본 사 : 서울시 용산구 원효로2가 57-13번지 1층 전화 : 02-3275-0610
영업소 : 선인1영업소: 02-3274-0021,
선인2영업소: 02-3274-0020
원효 영업소 : 02-3275-0011,
인천 영업소 : 032-868-9671
안산 영업소 : 031-432-5445,
테크노영업소: 02-3424-8666

주*취급품목 : 삼성전자 기기 각종 부품, 컴퓨터주변기기, 모니터, 하드디스크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