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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박언휘원장의 인터뷰는 울릉독도인터넷뉴스의  배성복 편집인의 승인을 득하여
게시판에 게재된 것을 울릉인의 파일에 전재하였음을 알려드립니다.

외계층 무료진료, 대구의 슈바이처”로 알려진
울릉도 섬소녀의 삶과 꿈, 그리고 사랑이야기!


그저 동해의 작은 섬이었다.
그 섬에 사람이 살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그럴수록 그리움만 파도를 따라 울렁거렸다.
큰소리로 “오징어!. 호박엿!” 하면
아하 ~ 그 섬! 하면서 알 정도로 육지에서는 잊혀진 섬이었다.
그러다 최근에 독도가 국민의 영토사랑의 중심으로 떠오르면서
그 모섬인 울릉도도 수면위로 떠오르고 있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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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득하기만 했던 울릉도!
그 섬마을에서 태어나
파도만큼이나 푸른 꿈을 실현시켜 나가고 있어,
울릉.독도인들의 가슴에 뿌듯한 자부심으로 자리 잡고 있는 사람!.
많은 출향인들 가운데 소외계층 무료진료,
장애인 무료진료 등 사회봉사활동으로
대구 수성구민상과 2009년도 대한민국사회봉사상을 수상한
박언휘종합내과병원 박언휘 원장으로 만나보았다.


문] 원장님 안녕하세요? 먼저 고향분들에게 인사말씀 해주시죠?

네 오랫동안 못 찾아 뵈서 보고 싶고, 어릴적 모습 생각나고 열심히 사시는 모습 고맙습니다. 육지에서는 고향이 그리우면 차를 몰고 금방이라도 달려 갈 수 있겠지만 울릉도가 고향인 저는 가고 싶어도 쉬이 가지 못 하는게 사실입니다. 그래서 더욱 고향이 그리운지도 모릅니다. 고향에 계신 어르신들과 친구들, 그리고 특히 자라나는 젊은 꿈나무들! 모두가 열심히 사시는 모습이 아름답고 많이 그립습니다. 이렇게나마 안부 전하게 되어서 감사하게 생각하며, 자주 찾아뵙도록 노력하겠습니다. 특히 예쁜 추억을 가지고 있는 친구 말분씨!. 전형적인 울릉도 아줌마로 열심히 사는 모습 아름답고 꼭 안부 전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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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 울릉도에서 태어나셨는데 초등학교 입학하기 전 유년시절을 회고하여 말씀해 주세요!

저의 유년시절은 그렇게 부유하지는 않았지만 별 어려움 없이 자랐습니다. 평범한 회사원이신 아버지에 가정주부이신 어머니! 화목한 가정에서 자랐습니다. 특히 저는 어려서 허약체질이라 부모님께 걱정을 많이 끼친 기억이 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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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초등학교, 중학교를 울릉도에서 다녔는데 그 꿈 많은 소녀시절이 궁금합니다.!

사실 초등학교, 중학교를 울릉도에서 다녔지만 공부하느라 친구들과 추억을 많이 만들지는 못한 것 갔습니다. 그래도 막연하게나마 육지를 동경하고 너무 몸이 약해서 꼭 의사가 되겠다는 생각으로 공부했던 것 갔습니다.

어머니는 공부 못하게 말렸고 저는 이불을 뒤집어쓰고 공부했던 기억이 납니다.

그래서 초등학교, 중학교 시절 꼭 일등을 놓쳐 본 적이 없습니다. 그래서 친구들과 많은 추억을 만들지 못해서 미안하기도 하네요.

지금 생각하면 도동 항구를 내려다보면서 배가 들어왔다 갔다 하는 것을 보면서 육지를 많이 동경했던 것 갔습니다. 지금 3시간이면 가지만 그때는 7시간 10시간이 기본이었습니다. 중학교를 졸업하고 고등학교는 대구여고에 다녔습니다. 울릉도에 집이 있고 대구에서 하숙을 하며 공부하기란 여간 어려운게 아니었습니다. 나중에는 아버지께서 집을 사서 동생들과 함께 학교를 다녔는데 저는 대구여고에 들어갈 때 수석입학에 졸업할 때도 수석 졸업했습니다.

그래서 경북대 의대에 진학하여 본격적인 의사 공부를 하게 된 것입니다.

특히 대학2학년 때는 아버지의 사업실패로 가세가 기울어 거리에 나앉게 되었습니다. 그 때 너무 힘이 들어 자살을 시도한 경험도 있습니다. 3일 만에 깨어나 보니 얼마나 어리석은 생각이었는지 깨닫게 되었고, 그때부터 새로 얻은 생명이라 여기고 다른 사람을 위한 봉사의 삶을 살아야겠다고 다짐하게 되었습니다.

돌이켜 보니 어릴적 친구들이 그렇게 심한 병도 아닌데 치료를 받지 못해 죽어 갔습니다. 육지에서는 주사 한방이면 나을 병을 울릉도에서는 죽기까지 했으니 그 때 다짐했던 의사의 꿈을 새롭게 다지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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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울릉도 출신들이 육지에서 공부하기가 모든 면에서 어려웠을 텐데 말씀해주시고, 지금 육지에와서 공부하는 학생들에게 격려의 말씀을 해 주세요!

지금 많이 좋아졌다고는 하지만 아직도 울릉도 학생들이 육지에서 공부하기란 어려운 점이 많이 있습니다. 그런데 저는 형편이 열악하다고 공부 못한다는 것에는 동의 할 수가 없습니다.

아무리 환경이 열악하다고 해도 하고자 하는 의지만 있다면 할 수 있습니다. 환경 탓하기전에 최선을 다하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어려운 환경을 극복하는 것이 더 많이 공부 할 수 있는 조건이입니다. 꿈을 가지고 그 꿈을 실현시키기 위해 열심히 노력하는 것이 최선의 방법입니다.

어려움을 극복하는 사례가 도리어 힘이 되는 경우를 많이 봅니다.  왜 공부를  해야하는지를 생각해보면 답이 나옵니다. 공부를 할 수 밖에 없어요. 공부 안하면 뭐 할 거에요?.

울릉군에서 각 대학교마다 학습관을 제공해 주도록 편의를 제공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열심히 하십시다. 환경은 생각하기 나름입니다. 파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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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 지금 운영하고 계신 박언휘종합내과는 언제 개원했나요?

올해 개원 4주년 되었네요. 개원하게 된 동기도 내맘대로 봉사하고 싶어서입니다. 봉사하고 싶어도 내 맘대로 못하는 게 싫어 개원을 하게 되었습니다.

어려운 사람들에게는 좀 싸게 해 드릴 수도 있고, 정말 현편이 어려운 사람들에게는 무료로 진료를 해드릴 수도 있지 않겠습니까?. 병원규모가 좀 커요. 개인병원으로서는 대구에서도 가장 큰 편에 속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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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병원진료에 바쁘실텐데 사회봉사활동을 열심히 하신다니 구체적으로 어디에 어떤 봉사활동을 하시고 있나요?

저는 대학 졸업하고부터 봉사활동을 시작하였습니다. 처음에는 교회를 빌려서 진료를 하고, 저녁에는 방문진료를 다녔습니다. 장애인복지시설 및 무료진료를 틈틈이 하고 있습니다.

울릉도에도 무료진료를 나갔는데 많이들 서먹서먹해 하시고 해서 마음이 아팠습니다. 예방접종이다 뭐다 해드리고 싶은게 너무 많은데 진료봉사 나가면 마음 푹 놓고 진료를 받으시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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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대구 수성구민상을 수상하셨던데 어떤 상인가요?

 2007년도 제2회 수성구민상을 수상했습니다. 장애인봉사등 소외계층 무료진료 등의 공적으로 받게 되었는데 누가 추천을 했는지 모릅니다. 수성구민들에게 주어지는 가장큰상이라고 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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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2009년도 대한민국사회봉사상을 수상하신 것 축하드립니다.

울릉군민의 한사람으로 자랑스럽습니다. 어떤 계기로 받게 되었나요?

이 상도 한국인터넷언론협회에서 주관하고 국회, 보건복지부에서 주어지는 봉사대상으로 시에서 추천하여 공적심사를 통하여 수상을 하게 되었습니다.

당연히 해야 할 일을 한 것뿐인데, 처음에는 안 받으려고 했습니다. 사실 이 상 받으면 더 많이 해야하는 게 아닌가? 걱정도 되었고요. 부담 갖지 않으려고 사양했습니다. 그러나 나는 역량이 모자라 더 많이 못하더라도 다른 사람들이 봉사활동에 참여하는 계기가 되었으면 하는 바램으로 수상을 하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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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소외계층을 돕는 것은 내 삶의 이유라고 말씀하셨는데 특별한 계기가 있었습니까?

울릉도에서 어릴적에 몸이 허약해 많이 어려웠습니다. 그리고 울릉도에 계시는 어머니께서 “사람은 착하게 살아야 한다”, “좋은 일 많이 해야 오래 산다” 입버릇처럼 해오신 말씀이 어려운 사람을 돕게 만든 것 같아요.

몸이 허약한 나는 오래살아야하는데 그럴려면 좋은 일 많이 해야 된다고 믿었어요. 지금도 그 믿음에 변함이 없구요.

아직도 생각납니다. 어머니께서 소고기를 신문지에 싸서 누구집에 갔다주고 오너라 하면 나는 뭔지도 모르고 배달한 기억이 납니다. 그것도 청마루에 몰래 두고 오는 것이 내 특기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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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다시 고향에 대해서 여쭤보겟습니다. 울릉도의 의료현실이 매우 열악합니다. 고향에서 진료를 하실 생각은 없으신지요?

울릉도의 의료현실이 열악한게 아니라 접근성이 떨어지니까 열악한 거라고 봅니다. 하드웨어보다 소프트웨어가 열악하다는 말입니다.

교통이 좋아지고 접근성이 좋아지면 당연히 의사들도 들어가게 되고, 중환자는 쉽게 육지의 큰병원으로 이송하여 제 때에 치료를 받을 수 있지 않겠습니까?

단순히 의료 기술만이 좋아져서 되는게 아니고 그것을 뒷받침해주는 여러 환경들이 함께 갖추어져야 한다고 봅니다. 비행기만 운항되도 그기에 들어가서 개업할 의사도 있을 것입니다.

고향에서 진료를 하고 싶습니다. 마음뿐이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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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 울릉도에 오실 때 면 오랜만에 찾은 고향이지만 쉬지도 못하고 무료진료를 다니시는 것을 보았습니다. 울릉도 사람들은 원장님이 진료를 해주시면 병이 잘 났는다고 말합니다. 그것은 원장님이 진료를 잘하시는 것도 있지만 무엇보다도 고향사람으로서 원장님을 믿으신다는 증거입니다. 울릉도에도 자주 찾아주실 계획은 없으신지요?


네 앞으로는 자주 고향 분들을 찾아뵙고 진료도 해드리고 이런저런 살아가는 예기들을 나누고 싶습니다.

저도 울릉도에 노인복지시설을 설치할려고 마음을 먹었는데 군청관계자가 노인복지시설이 너무 많다고 하고, 울릉도에는 불필요한 시설이라고 해서 못했습니다. 앞으로 기회가 닿는다면 고향에서 일해보고 싶습니다.

고향분들도 제가 있는 병원에 와서 진료를 받은 분들이 있는데요, 특별히 고향분들이라고 잘해드리지도 못합니다. 그냥 마음뿐이지요. 그래도 고향분이라는 것 때문에 다들 편하게 대해 주시니까 마음의 안정을 찾고 병이 빨리 낫는 것 갔습니다.

또한 저는 환자를 볼 때 항상 기도하는 마음으로 진료를 합니다. 감사합니다. 이 환자가 저희 병원에 와서 감사하고, 병이 나아서 감사하고, 감사하지 않는게 하나도 없습니다. 모든게 감사할 따름입니다. 그래서 최선을 다할 수 있게 해 달라고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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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진료 또는 봉사활동을 하시면서 특별히 기억에 남는 분이 있다면?

네 성주분인데 성주보건소 건무 시 결핵환자였습니다. 월급타면 결핵환자들에게 계란 한판씩 사 드렸습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병세가 호전되었습니다. 그때만 해도 시골에서는 영양상태가 그리 좋지 못한 편이라 계란이 많은 도움을 준 것으로 판단됩니다. 

그리고 장애인인데 하반신이 없어 움직이지 못하시는 분인데 날마다 배탈로 고생하고 있었습니다. 가만히 살펴보니 혼자서 움직이지 못하니까 누군가 가져다주는 음식을 먹고 남은 음식을 보관하지 못해 그것을 다음날 또 드시니까 메일 배탈이 나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상하지 않은 음식을 먹을 수 있도록 해드리니 좀 나았습니다.

그리고 무엇을 제일 하고 싶은가? 라고 물으니 사람을 보고 싶다고 했습니다. 이 소릴 듣는 순간 뭔가 한방 크게 얻어맞은 것처럼 마음이 무거워졌습니다. 병이 무서운게 아니라 고립된 생활 속에서 사람들과의 정이 그리웠던 것입니다.

그래서 그 분을 모시고 나들이를 해준 적이 있는데 그렇게 밝은 모습을 처음 보았습니다. 그때 모든 병은 마음의 병이 먼저 치료가 필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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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 사랑의 책 모으기 운동을 펼치고 계신데 어떤 운동인가요?

네  고아원이나, 시설에 주로 지원을 해주고 있습니다. 우리 병원을 다녀가신 분들이 한권씩, 두권씩 보내주시고 계신데 마음의 병을 치료하는데는 책이 하나의 방법이 된다는 생각에 책을 모아 기증을 해오고 있습니다.

몇 번 기증을 하고 지금 또 많이 모였습니다. 또 어딘가 기증을 하려고 합니다. 책 읽는 시간이 행복한 시간이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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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 앞으로 계획이 있으시다면 말씀해 주세요!

네 내고향 울릉도에 자주 진료해 드리러 가고 싶습니다. 도동을 벗어나 본적이 없었는데 이제는 울릉도 가면 서면도 가고, 북면도 가고, 죽도도 한번 가보고 싶습니다. 고향분들에게 좀 더 많은 진료 기회를 제공해 드리도록 노력해 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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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 고향에 계신 친구분들에게 한마디 해주세요.

다들 열심히 사는 모습이 너무 고맙고 아름답게 보입니다. 고향을 지키고 있는 것만으로도 감사할 따름이죠.  말분이가 보고 싶네요. 그리고 말 안해도 알지 쉽은데 김두한이라고 잘생긴 동창도 있어요. 다들 보고 싶습니다.

 


문] 기타 알리고 싶은 내용이 있으시다면?

네  앞으로 병원을 키워서 한쪽은 웰빙병원! 한쪽은 소외계층을 진료하는 병원으로 운영하고 싶습니다.

일전에 방글라대시인을 진료해 주었는데 나보고 엄마라고 해요. 너무나 당황스럽고, 내가 그렇게 늙었나 하고 거울을 쳐다보았습니다. 아직은 젊어 보이는데 이사람이 왜 나를 엄마라고 할까? 하고 곰곰이 생각해보았습니다. 

정말이지 엄마란 소리가 듣기 싫었습니다. 그래서 엄마라고 부르지 말라고 했더니 눈물을 뚝뚝 흘립니다. 참으로 난감 했어요. 그 모습을 보니 또 측은한 생각이 들어 친절하게 대해 주었습니다.

사람이 남자 여자 할 것 없이 가장 그리운 분이 누굴까요? 그것은 아마 엄마일 것입니다. 어머니 보다 더 친근하고, 더 그리운 단어가 있으면 말해보세요. 없었습니다.

이국만리 낯선 땅에서 몸이 아팠으니 엄마가 얼마나 그리웠겠어요. 그것을 생각하는 순간 내가 무슨 의사냐고 자문하게 되고 이제는 많은 사람들에게 의사보다도 엄마가 되어 드려야 겠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 외국인을 통해서 내가 한층 업그레이드 된 기분입니다. 앞으로는 어머니가 되어 주고 싶다는 것이 희망입니다.


장시간 대담에 응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원장님의 활발한 활동 기대하면서 고향 울릉도에서도 자주 뵙게 되기를 희망합니다.


박언휘 원장은 1968.2 울릉초등학교와, 1971.2 울릉중학교를 졸업하고 1974.2 대구여자고등학교, 1982.2 경북대학교의과대학을 졸업했다.

성주군보건소 진료의사, 청도군보건소진료의사, 미국뉴욕주립대학 children's hospital of Buffalo visiting physician, 영남대학교의료원 내과, 동국대학교병원, 대구세강병원 내과과장, 경북대학교소화기내과, 대구병원내과과장, 경산대학교의료원양방원장 및 내과교수, 대구동부허병원원장을 거쳐 2005부터 현재까지 박언휘종합내과원장으로 있다.


또한 대구 가정법룰상담소 이사장, 대구 새교육 시민모임 공동대표, 대한노화방지연구소 이사장, 민족문화연구회 고문, 대구 곰두리봉사회 의료고문 및 봉사단장, 대구 지체장애인협회 의료고문,  한국 노년 자원봉사회 이사, 남구 노인 복지회관 부회장, 대구소비자파워협회 고문, 동서의학연구회회장, 국제휠체어마라톤대회의료고문 등 수많은 사회봉사활동에 참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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