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동 새각단에서 순영씨의 장남으로 1968년도에 태어났다. 큰 아버지가 그 유명한 독도의용수비대 홍순칠 대장이다. 언제나 그렇듯이 독도는 우리민족 모두에게 그리움의 대상이자 가슴 설레게 하는 성지순례와 같은 곳이다. “독도영유권 문제의 해결방법에 관한 국제법적 연구”로 외국어대학교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한 홍성근(68년 사동)박사는 이제 대한민국 소장파 독도 전문가로 굳건히 자리매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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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독도 연구소 사무실에서


홍박사의 어렸을 적 모습이 어떠했는지 궁금하다. 지금은 폐교가 되었지만 장흥초등학교를 나온 걸로 알고 있습니다 만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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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동 장흥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중학교로 진학하면서 저동으로 이사를

했습니다. 그 즈음 아버지가 당뇨로 인해 몸이 아파 농사도 제대로 지을 수가 없어서 저동에 가면 좀 낫지 않게나 하고 옮긴 것이지요. 1981년도 정도였을 거에요. 어머니께서는 식당에서 허드렛일도 하셨고 나중에는 물풍(원양어선의 선체를 움직이지 못하게 하는 기구 같은 것) 만드는 일도 했습니다. 어머니가 재봉틀 솜씨가 남달라서 아주 반응이 좋았던 같아요. 저는 저동에서 울릉중학교를 다녔고 중학교를 마치고는 대구 능인고등학교에 입학을 했습니다. 대구지역 고등학교 입시가 연합고사여서 어찌하다 보니 불교계 학교로 가게 되었어요.

 

홍박사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87년도에 외국어 대학에 들어왔다. 법대에 다니다가 89년도에 방위로 울릉도에서 근무했고, 91년도에 복학을 하여 93년도에 졸업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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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동 새각단에서 어느날


대학 졸업을 즈음해서 고시 공부를 시작했는데, 허리가 아파서 고생을 했습니다. 2년 정도 고시 준비를 했는데, 허리가 계속 아파서 그만두고 스물여덟 해이던 95년도, 그야말로 백수시절에 결혼을 했습니다. 참 일찍 한 것이지요. 아무것도 없이 결혼을 했는데, 지금 생각해 봐도 어떻게 결혼을 했는지 참 용하다 싶습니다. 결혼을 할 수 있도록 도와준 가족들에게 감사할 따름입니다.

 

울릉도에서 어렸을 적 나왔다면 고생깨나 했을 것 같은데, 전혀 그런 표정이 아니다. 표정이 밝아서였을까, 천성이 밝아서였을까 누구나 그냥 스쳐가는 과정인 듯 했다.

 그 당시는 고생이라면 고생이었지요. 그래도 가난하더라도 찌들게 살지는 않았던 것 같아요.

 

인터뷰 내내 조용한 목소리로 대하는 홍박사의 성격이 조선의 선비를 연상케 한다. 국회로부터 국정감사에 필요한 자료요청의 메모가 인터뷰실 안으로 계속 들어오고 약간은 어수선할 터인데도 차분하게 업무를 마치고는 다시 인터뷰를 계속한다. 독도연구소 직원이 홍박사를 다시 찾기 위해 회의실로 들어온다.

인터뷰 하는 뒷 벽면에 대형 독도 공중사진이 홍박사의 현재의 모습을 나타내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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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독도에서 기념촬영을 하다

허리 치료를 계속하다가 96년도에 대학원으로 진로를 바꾸고 국제법 전공을 했습니다. 전공을 무엇으로 할 것인가를 고민고민 하다가 제가 잘 할 수 있는 게 뭘까, 좋아하는 게 뭘까를 생각하다가 집안 배경도 있고 해서 독도로 방향을 잡았습니다, 96년 그 당시에 막 독도문제가 터져서 시끄러울 때였지요.

 

홍박사는 홍순칠 대장인 큰 아버지와 증조부이신 홍재현 할아버지의 영향도 있었고 96년도의 한일어업협정문제가 시끄러웠을 때 결심을 굳힌 듯하다, 그래 이것이다. 독도는 내가 맡아서 연구를 하고 해결방법을 찾아내어야 한다. 이건 어쩌면 내가 추구해야 할 생의 목표이자 숙명이 아니겠는가 라는 느낌이었을 것이다.

석사학위 논문제목이 독도의 실효적 지배에 관한 국제법적 연구 이고 박사학위 논문제목은 독도영유권 문제의 해결방법에 관한 국제법적 연구 이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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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사학위 주제를 생각해 보았지요. 독도가 누구 땅인가? 그래서 실효적 지배에 관한 테마를 잡고 울릉도 사람들이 오랫동안 독도를 어떻게 내왕했으며 이용했는지 등을 따져보았지요. 결론은 한국 땅이다. 중앙 정부에서 내려와 독도에 관한 조사를 할 때 할아버지(홍재현)께서 증언한 것과, 1905년 이전부터 40여 차례를 독도를 다녔다는 것. 큰 아버지(홍순칠 대장)가 생전에 독도를 개발해야 한다고 주장한 내용들, 울릉도민이 독도를 이용하고 살아온 것, 실효적 지배 강화방안에 관한 것, 독도가 존재한 것은 울릉도가 있었기 때문이다 등등.. 이런 것들을 찾아내어서 연구를 한 것이지요. 울릉도와 독도는 연계해서 개발해야 한다 는 중요한 것을 찾아내었지요.

 

석사학위를 받은 이후에 홍박사는 일본 국제교류기금 초청으로 약 4개월간 집중적으로 일어공부와 일본문화에 대해 공부할 기회도 가졌다고 한다. 
 

짧은 기간이었지만 일본을 알 수 있는 좋은 기회였습니다. 이후 2001년부터 대학 강사생활을 하면서 2003년 8월에 박사학위를 받았구요. 박사과정을 하면서도 동국대 겸임교수를 비롯해 대전대, 청주대, 경기대, 외대 용인 등에서 주로 국제법을 강의했습니다. 북한법, 법학개론, 법과 생활 등도 가르쳤지요. 2005년 4월까지 강사생활을 했습니다.

 

동북아의 평화를 위한 바른 역사정립기획단(바른역사기획단)에는 어떻게 들어오게 되었는지 궁금합니다.

 

2005년에 3월에 시마네현에서 죽도의 날을 제정통과를 시켰는데, 온 국민들이 그야말로 분노를 했지요. 이 때 정부에서도 독도를 체계적으로 연구해야 한다는 분위기였고, 청와대 소속으로 바른역사기획단에 제가 독도 대응팀의 선임연구관으로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독도와 관련된 젊은 사람을 찾다가 보니까 제가 선임이 된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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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독도연구소 앞에서

2005년 이후 지금까지 온 나라가 독도문제로 온통 난리가 난듯한데, 바쁜 날이었을 것 같다. 바른역사기획단의 성격과 어떤 작업을 해왔는지 약간만 설명을 해 주신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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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도문제를 장기적으로 연구할 수 있는 기관을 만들어야겠다고 정부가 판단을 한 것입니다. 현안이 생길 때마다 대처하기 보다는 체계적으로 연구를 해야 할 필요성이 대두된 것이지요. 전 1년 5개월간 독도에 관한 각종 보고서를 쓰고 청와대 홈페이지 등에 칼럼을 쓰고 했습니다.

 

독도문제가 불거지면 매스컴에서는 각종 좌담회가 벌어진다. 독도 전문가 들 수명이 모여서 현안문제와 미래의 대처 방안을 토론하는 자리에는 항상 홍박사가 그 중심에 서 있다. 2005년도 한국일보에 “독도는 우리 땅”이라는 타이틀로 독도 전문가들의 릴레이 기고문 중 홍박사의 “생산하는 독도를 만들자” 는 기고문이 큰 반향을 일으키기도 했다.

독도문제가 이슈화 되기만 하면 서울대의 신용하교수, 외대의 이장희교수가 그 중심에 서 있었으나 앞으로는 홍박사가 그 뒤를 이을 것이 분명하다.

특히 지난 8월14일에 이 땅에 독도연구소가 정식으로 발족하지 않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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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독도연구소에 서 출간한 각종 자료


이번 교과서 문제가 터지면서 동북아역사재단 안에 독도연구소가 8월14일에 만들어 져있습니다. 연구소 안에는 정책대응팀, 연구조사팀, 대외협력팀이 있는데 저는 연구조사팀의 팀장으로서 독도영유권 논리나 새로운 논리를 개발하는 역할을 맡고 있습니다.

 

독도만을 가지고 석박사 학위논문을 쓴 사람이 드문 오늘, 홍박사는 독도연구소의 제2팀장으로서 앞으로의 활약이 기대될 뿐만 아니라, 원로학자들이 은퇴한 이후의 독도문제는 결국 홍박사의 역할에 달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일본에도 자주 방문해야 되는 것 아닙니까? 이 곳에서만 왁자지껄할 것이 아니라 자주 가서 일본학자들과도 토론도 하고 정보도 입수하고 해야 되는 것 아닙니까? 공연히 궁금해져서 슬쩍 물어보았다.

 

가끔 갑니다 만은 독도관련 행사를 참관하는 정도이지요. 직접 맞대응하는 것은 어렵지만, 안용복 장군이 머물렀던 곳이라던가 기본 자료조사도 합니다. 일본의 우익들과 관련이 되어 있어서 좀 조심스럽기는 하지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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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독도 이미지를 벽화로 처리한 연구소 안에서


가족으로는 부인
이애경 여사와 초등학교 3학년인 홍선재 군과 함께 단란한 가정을 꾸미고 있다. 울릉군 이상태 경북도의원이 홍박사의 장인이시다.

우리국민 모두가 독도에 대한 무한한 사랑을 갖고 있고, 홍박사는 앞으로 계속 독도를 연구하고 논리를 개발하고 자료를 찾아내어 우리들에게 시원한 해답을 가져다 줄 것으로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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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족과 함께 사동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