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증권감독원에서 20여년, 금융감독원에서 7년간 비서실장, 은행검사국장, 증권감독국장, 부원장보, 그리고 2005년 1월말부터 한국증권선물거래소의 초대 시장감시위원장으로 3년째 근무하고 있는 재경 울릉향우회 이영호(49 태하) 부회장을 3월3일 휴무일임에도 사무실에서 책을 읽고 있다고 하여 오전11시 서울 여의도 한국증권선물거래소 시장감시위원장실로 찾아갔습니다.


 강 국장 : 이 위원장 오랜만입니다. 지난 2월초에 전화하니 다리를 다쳤다고 하던데 많이 나았는지요?
이 위원장 : 의사말로는 다리 인대수술을 하면 낫는데 보통 6개월이 걸린다고 합디다. 이제 3개월이 지났으니 그만큼 더 기다려야 할 것 같습니다.

사무국장 :
이 위원장은 어린시절 고향에서 울릉중학교를 졸업하고 대구로 진학하여 고생 많이 하면서 공부했다면서요?
이 위원장 : 고향에서 중학교를 졸업하고 경북사대부속고등학교에 입학하여 1학년 때는 자취하고, 2학년 때는 입주가정교사로, 3학년 때는 동기생 집에 입주하여 같이 공부하였지요. 그 시절 우리고향선후배들도 대개가 그렇게 어렵게 공부했지요.
 사무국장 : 한국증권선물거래소 시장감시위원회의 위원장으로 지금 하고 있는 일에 대하여 말씀해 주시지요.

이 위원장 : 한국증권선물거래소는 2005년도 1월 증권거래소, 선물거래소, 코스닥증권시장과 코스닥위원회 등 4개 기관이 통합되어 세계10대 시장 안에 들어가는 큰 시장이 되었습니다. 저희 시장감시위원회가 하는 일은 시장에서의 불법ㆍ탈법행위를 감시하고 찾아내어 이를 사전에 차단하거나 감독당국에 처벌을 의뢰하기도 하고 시장감시위원회에서 직접 증권사와 선물사를 처벌하는 일을 합니다. 시장감시위원회는 우리 자본시장의 기능이 원활히 작동되도록 함으로써 증권선물시장이 정상적으로 유지ㆍ발전되도록 하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사무국장 :
이 위원장은 1977년부터 지금까지 30여 년간 오직 한 분야에서 우리나라 증권금융시장의 기능을 지켜온 감시인으로서 산 증인이신데 이력을 간단히 소개해 주시죠.
이 위원장 : 대학을 졸업하기 전 해인 1977년 12월에 증권감독원에 입원하여 1998년 금융감독위원장 비서실장으로 파견 근무하다가 1999년 1월부터 증권감독원, 은행감독원, 보험감독원과 신용관리기금 등 4개 기구가 통합하어 금융감독원으로 발족한 후 2005년 1월까지 근무하고 2005년 1월말부터 한국증권선물거래소 시장감시위원장으로 지금까지 근무하고 있습니다.
사무국장 :
금융감독위원회와 금융감독원은 둘 다 정부기구인가요? 그 간부들의 직급은 어떻게 되어있나요?
이 위원장 : 금융감독위원회는 정부기구이고 위원장은 장관, 부위원장은 차관, 상임위원이 차관보입니다. 금융감독원은 앞에서 언급한 4개 기구가 통합되어 우리나라 은행ㆍ증권ㆍ보험ㆍ상호저축기관 등 모든 금융기관을 관리ㆍ감독하는 특수 민간기구이지만 그 기능이 정부와 유사하기 때문에 준 정부 기구라고 봐도 되겠지요. 그리고 금융감독원장은 금융감독위원장이 겸임하도록 되어 있고 금융감독원 부원장은 금융감독위원회 상임위원이 영전해가는 자리이기도 하니까 민간 신분이지만 굳이 정부기관과 비교한다면 아마 차관보급쯤 될 수 있을까요?

사무국장 :
그러면 이 위원장께서도 금융감독원 부원장보로 근무하시다 한국증권선물거래소 시장감시위원장으로 영전하였으니 금융감독위원회와 비교한다면 차관보급입니다.
이 위원장 :
한국증권선물거래소는 순수 민간기구이니 단순비교로는 안되겠지요. 그러나 거래소 이사장과 시장감시위원장은 주주총회에서 선임하지만 이사장은 재정경제부 장관이, 시장감시위원장은 금융감독위원장이 해임할 수 있는 권한이 있어 제 직무는 공적기능이 강하다고나 할까요?

사무국장 : 어떻게 한 분야에서 그렇게 장기간 종사할 수 있었는지 궁금합니다. 그 동안 어려웠던 일은 없었습니까? 혹시 다른 직장에서 스카웃 유혹은 없었나요?
이 위원장 :
1998년부터 우리나라 경제가 IMF 구제금융체제에 들어가자 경제ㆍ금융회생의 핵심책임을 맡았던 곳이 금감위와 금감원 이었습니다. 거기서 근무할 때 가장 힘들었어요. 수많은 금융기관이 통폐합되고 기업들이 구조조정을 하면서 많은 사람들이 위원장을 만나기를 원했으나 이해관계에서 중립적이어야 할 위원장입장에서는 그 요청을 다 들어줄 수가 없었기 때문에 제가 비서실장으로서 이들을 이해시키고 그들의 고충을 들어줄 수밖에 없어 직무수행이 너무나 힘들었습니다. 그러나 지나고 보니 국가경제회생의 선봉장을 모시고 일했다는 자부심은 남습니다. 그리고 다른 직장으로 옮기라는 권유도 두어 번 받았지요. 한번은 증권감독원 대리 때 감사원에 특채 케이스로 추천이 되었는데 월급을 비교해 보니 많이 차이가나서 그때만 해도 가난했던 시절이라 옮길 엄두가 나지 않더군요. 또 한번은 과장 때 외국계 금융회사에서 임원으로 오라는 제의를 받고 아내와는 옮기기로 다 의논이 끝났는데 당시 고등학생이었던 아들이 반대하여 포기한 일이 있었지요. 그때 옮겼으면 경제적으로는 유족해졌을지도 모르지요.

사무국장 :
증권감독원에서 직장생활을 시작하여 한 세대(30년)동안 한 분야에서 종사하여 대성하였습니다. 앞으로 특별한 계획이라도 하고 계신지요?
이 위원장 :
내가 직장생활을 시작하기 전 거의 30여년을 어머님과 아내의 도움으로 성장하며 학교를 다녔고, 직장생활을 시작하여 어머님 모시고 아내와 아들, 딸을 부양하면서 30여년을 살아왔으니 앞으로는 얼마의 기간이 될지 모르지만 자신과 가족이 아닌, 이웃을 위해 살아갈 수 있으면 합니다. 아직 그 구체적인 방법은 구상해 두지 않았습니다만.

 

사무국장 :
이 위원장은 학창시절에 우수한 학생으로 고향의 우리 세대사이에는 잘 알려져 있는데 학창시절 얘기 좀 해 주시지요.
이 위원장 : 지금 생각해 보면 고3때 좀 더 열심히 공부할걸 하는 아쉬움이 남습니다. 우리 때에는 고2 1학기에 수학여행을 갔는데 그때 시작한 음주로 그 후부터 공부에 조금 소홀하지 않았나 생각됩니다. 고등학교에서 공부를 잘하는 편이었으나 대학입시에 낙방하고 나서는 만사가 귀찮고 낙담하여 대학을 포기하고 울릉도에 들어가 오징어잡이도 하고 성인봉 기슭 영림 사업장에서 일도하고 밤에는 술도 마시면서 자신을 학대하고 세월을 허송했지요. 그렇게 방황을 하다보니 가을바람이 불기 시작했습니다. 어린 나이에도 이렇게 주저앉으면 안 되겠다는 생각에 다시 육지로 나와 독서실에서 한 3개월간 공부해보니 서울법대는 갈 자신이 서지 않아 고대법과에 하향지원해서 들어갔습니다. 어떻게 보면 무모하기도 하고 운이 좋았다고 봐야 되겠지요. 대학생활은 가정교사로 아르바이트하여 생활비를 벌었기 때문에 경제적으로 조금은 여유롭게 한 편이었지만 재학 중에 휴학하고 울릉도에서 2년간 방위근무 하고, 한동안 사법고시 공부한다고 대학졸업은 좀 늦게 했지요.

사무국장 : 가족이야기 좀 해주시지요.
이 위원장 :
어머니를 모시고 아내 최기상(49,통구미)과 아들, 딸이 양천구 목동 변두리에 살고 있습니다. 고향 울릉도 태하에 형님 내외분이 계시고 남양에 장인ㆍ장모님 두 분이 계십니다. 아직도 고향에는 친가ㆍ처가 친인척들이 많이 있습니다. 어머니는 올해 여든셋이신데 건강하셔서 목동에서 강남 수서까지 지하철, 버스 갈아타시면서 한 마지기정도 되는 밭농사를 하시고 있습니다. 아내는 어머니 모시고 가족들 돌보며 대한민국 주부들이 대부분 그렇듯이 모범 주부로서 식구들 뒷바라지 하고 있고 아들(76년생)과 딸(81년생)은 대학졸업 후 둘 다 금융회사에 다니고 있습니다.
 

사무국장 : 결혼을 언제 하였는지요?
이 위원장 :
결혼은 대학졸업하기 전인 1975년에 하였습니다. 방위복무를 마치고 고시공부하고 있을 때 동갑내기인 아내가 8남매의 맏이였기 때문에 나로 인해 결혼이 늦어지면 안 된다는 생각에 결혼부터 먼저 했습니다. 그리고 공부한다고 한 3년 별거했지요. 그리고 우리 때는 나이가 서른이 넘으면 취업하기 어려운 연령 데드라인이 있어서 스물 아홉 살 끝 무렵에 증권감독원에 입원했습니다. 인천 주안에서 7년 정도 살다가 87년 서울 목동아파트단지 입주할 때 서울로 와서 지금까지 살고 있습니다.

사무국장 :
고향 친구들은 자주 만납니까?
이 위원장 :
업무가 바쁘기도 하고 마흔 살 때부터 술을 끊은 후에는 친구들과 자주 어울리지는 못하지만 가끔 한번씩 봅니다. 육지에 나와 있는 고향친구들은 초등학교, 중학교 동기들이고 고등학교와 대학 때 친했던 친구들도 가끔 만납니다.

사무국장 : 고향에는 한번씩 갑니까?
이 위원장 :
울릉도는 지난 2년간 좀 많이 다녀왔습니다. 업무상 대인관계가 잦다보니 골프대신 주말 또는 연휴에 울릉도 여행으로 대신합니다. 정확하게는 모르겠으나 작년ㆍ재작년에 스물 댓 번 울릉도를 다녀왔을 겁니다. 주로 언론관계자 등 평소의 지인들과 함께 다녀옵니다.

 

사무국장 :
고향을 사랑하는 이 위원장의 마음이라 생각합니다.
이 위원장 :
저의 입장으로서는 고향을 핑계로 울릉도를 이용해 먹는다고 생각합니다. 사실 토요일 새벽 일찍 출발하여 울릉도 가서 성인봉 등산, 해상관광하고 주일날 밤 늦게 서울로 돌아오는 여행은 상당히 힘들지요. 그렇지만 같이 가는 분들이 아주 만족해하시고 울릉도 홍보까지 해주시니까 상당히 보람도 느낍니다. 어쩌다 2박3일 연휴가 될 때는 다녀오기가 정말 좋습니다. 그런 때는 한번 모시고 싶은 분들과 같이 울릉도를 다녀옵니다. 저희 시장감시위원회 직원 중에 절반정도가 울릉도를 다녀왔습니다. 물론 저는 가이드 역할도 하지만 육지에서 맛볼 수 없는 식사를 매끼마다 대접하니 그것 때문에도 울릉도를 한번 다녀온 분들은 감동합니다. 울릉도에 한번이라도 가 본 분들은 그렇게 어렵지 않다고 생각하는데 안가본분들은 울릉도가 아주 멀고 시간이 많이 걸린다고 생각하니 많은 분들이 울릉도에 대해서 잘 모르고 있다고 볼 수 있지요.

 사무국장 : 울릉도 출신 금융업계의 선배로서 일찍부터 후배들을 잘 보살핀다고 들어 알고 있습니다.
이 위원장 : 제가 감독원에 있을 때 후배들을 모아 모임을 만들었습니다. 전에는 자주 만났으나 근래는 저가 좀 바쁘다보니 모임에 자주 참석을 못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후배들 중에도 벌써 현직을 떠날 나이가 되가는 회원들이 있으니 저나 후배 금융인들이 젊은 고향후배 금융인들을 찾아 유대관계를 가져야 하는데 아직은 그러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사무국장 :
고향 울릉도의 발전을 위하여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이라고 생각 하십니까? 지난 2년간 25회정도 다녀와 느끼고 생각하는 것을 말씀해 주십시오.
이 위원장 :
동해의 고도 울릉도는 독도라는 이슈가 있는, 우리나라 국민이라면 누구나 가보고 싶어 하는 곳이지만 그리 쉽게 갈 수 있는 곳이 아니라는 생각들을 많이 합니다. 그리고 교통비가 너무 많이 든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더욱 많은 사람들이 좀더 쉽게 울릉도를 찾을 수 있는 방안을 찾아봐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울릉도 관광이 지금같이 눈으로만 보고 오는 관광이 아니라 좀 느끼면서 가슴에 담아올 수 있는 고급스러운 관광도 할 수 있도록 차별화된 상품을 개발하고 시설과 서비스도 개선해야 한다고 봅니다. 저는 같이 여행을 하는 분들에게 현재로서 할 수 있는 고품질의 관광을 체험하도록 합니다. 예를 들어 성인봉 등산은 물론, 내수전과 행남 등대 트래킹, 그리고 죽도 및 섬 일주 해상관광을 필수코스로 하고 있지요. 또 열합밥, 따개비죽, 꽁치물회, 메바리회에다 전복ㆍ석화등 해산물과 울릉한우와 함께 고비, 삼나물, 미역취, 부지깽이, 곤두서리, 엉겅퀴, 땅두릅 등 울릉도 특유의 산채로만 반찬으로 내게 하지요. 거기에다 나리동에서 나는 마가목주까지 곁들이니 손님들이 감동할 수밖에요. 이렇게 하면 주말여행은 되고 2박3일 여정이 되면 독도를 다녀오면 금상첨화지요. 북면 석포에서 내수전 정매화 골짝을 거처 전망대까지, 그리고 태하 등대와 행남 등대 코스는 우리나라 최고의 트래킹 코스라 생각합니다. 이런 관광코스는 앞으로도 잘 보존하여 관광자원으로 활용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울릉군민의 생활편의와 관광객의 접근성을 높이기 위해서는 일주도로가 시급한 일이라 생각하지만, 아직 개통하지 못한 북면에서 저동 내수전 구간은 공사기간과 비용이 많이 들더라도 후대를 위하여 세계 유명 관광지에서 볼 수 있는 바닷가 절벽을 디긋(ㄷ)자로 도로를 파서 차가 다니고 관광객도 걸어서 관광할 수 있는 명소를 만들었으면 합니다. 많은 외지 사람들을 관광과 휴양을 오게 한다면 군민의 경제생활이 좀더 풍요로울 뿐만 아니라, 독도 영유권의 핵심이 되는 실효적 지배문제 해결에도 도움이 될 것입니다.

 

사무국장 : 특별한 좌우명이나 후배들에게 들려줄 귀감이 될만한 말씀을 해주시고 마지막으로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후회되거나 뭐 그런 것은 없습니까?
이 위원장 : 뭐 특별히 좌우명이나 귀감이 될만한 것은 없어요. 다만 욕심 부리지 않고 늘 감사하면서 긍정적으로 사물을 바라보려고 노력합니다. 제가 여기까지 온것은 제힘으로 한 것이라고는 거의 없습니다. 언제나 나와 함께하시는 그분께서 이루어 주신 것이지요. 좀 후회되는 게 있다면 삶을 좀더 아껴 쓰지 못하고 인생을 낭비한 잘못을 저질렀다는 것일 텐데요. 늘 그러지 말자고 다짐하지만 뜻대로 되지 않는군요.

사무국장 : 오랜 시간 좋은 말씀 해주tu서 대단히 감사합니다. 고향 울릉도의 발전과 재경향우회의 발전을 위하여 앞으로 더욱더 힘써 주시길 바랍니다.
이 위원장 : 이렇게 찾아 주셔서 감사합니다.
 
학력 : 울릉중학교, 경북사대부고, 고려대학교 법학과 졸업

경력 : 금융감독위원회ㆍ금융감독원 비서실장, 동 은행검사국장, 동 증권감독국장, 동 부원장보(증권ㆍ보험담당),

           한국증권선물거래소 시장감시위원장

대담일시 : 2007년 3월 3일 장 소 : 서울 여의도 한국증권선물거래소 시장감시위원장실

대 담 자 : 재경울릉향우회 사무국장 강영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