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해룡(64, 도동)향우, 태국에 둥지를 틀다
도동 절골짜기에 택호가 김장군인 김종환 (1987년 작고) 어르신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우산국민학교, 울릉중학교, 울릉종고를 졸업하고 육지로 나온다. 가정형편이 그리 좋은 편도 아니고, 대구에 나와서 겨우 대학교 2년을 마치고 조그만 건설회사에 다니다가 1995년 말에 무작정 태국으로 떠난다.
사라부리 묘목장 앞에서 한 컷... 김해룡이사
“사실 앞이 보이지 않더군요. 젊을 때는 누구나 그렇듯이 많은 갈등이 있잖아요. 이럴 즈음에 마침 아는 지인이 태국에서 무역업을 하고 있었는데 주머니의 돈이라고는 달랑 31만원 밖에 없었는데 이걸 환전을 해서 그냥 무작정 떠났지요”
고생이 꽤 심했던 것 같다. 김해룡 이사를 태국으로 오게 만든 지인은 사정이 있어 이듬 해 한국으로 귀국을 해버렸다. 말도 통하지 않고 참으로 어려운 생활이 시작되었다. 이대로 돌아갈 수는 없지 않는가? 수년간의 고생이 시작되었다.
“ 돈이 없어서 작은 월세 아파트에서 지내고 있었는데, 이마저 쫓겨나기도 했고, 태국인이 운영하는 농수산물 공장에서 월급 34만을 받으면서 몇 년간 숱한 고생을 했지만 용기를 잃지 않고 꿋꿋하게 견디어 내었습니다.”
고생을 하다 보면 반드시 기회가 올 것으로 확신을 했다고 한다. 무언가 이곳은 희망이 있을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래서일까 그는 1999년 목재업을 하고 있는 현지의 태국인을 우연히 만나게 되면서 목재 쪽으로 발을 들여 놓게 되고 차츰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그래도 태국에 건너간지 불과 얼마 되지도 않아 꽤나 성공한 것 같은데 어떻게 돈을 모았으며 큰 목재회사를 운영하게 되었는지가 궁금하다.
“일본에서 받은 주문이 있었는데, 꽤 많았어요. 50 컨테이너 정도가 되었는데 바닥재였어요. 라오스 산인데 Apitong Flooring이라고 하는 것인데 제가 직접 라오스에 가서 몇 개월간 현장에서 인부들과 침식을 같이하면서 선적을 다 마쳤지요. 이 때 커미션으로 받은 돈이 꽤 되었습니다.”

지난 9월초 태국 월간지 "월간나무"와 기자회견 중인 모습
일본만 아니라 한국에도 수출을 했다. 경국산업과 인천에 있는㈜중동에도 수출을 했다. 이제 목재업에 가능성을 발견한 것이다. 그래 이거다. 해외 바이어도 생겼고, 현장에서 나무도 배웠다. 다시 태국으로 돌아가자, 가서 본격적으로 목재 비지니스를 시작하자.
조사를 시작했다. 제대로 된 목재회사를 찾아서 공동으로 경영을 하고자 한 것이다.
바로 현재 주주이사로 있는 Ruang Utai Wood에 지분 참여를 하여 기계설비도 새롭게 들이고 지금까지 계속 재투자를 해 오고 있다.

타구나무 원목
루앙우타이(Ruang Utai Wood)를 설명 해주시지요…
“종업원이 1100명이고, 주로 바닥재나 가구를 만들고 있는데 수출만해도 년간 700억원 정도되는 규모가 꽤 큽니다. 제가 8%의 지분을 갖고 있고, 현재 이사로 있습니다.”
2005년도에는 KBS라디오에서 취재도 왔다고 했다. 말씀 좀 해보시지요.
“루앙우 타이 및 일본업체와 합작으로 개발에 착수하여 8개월 여만에 원목 통나무로도 일반주택 및 아파트 온돌마루 쓰이고 원목이라 원목 고유에 향기로운 나무향 자체도 유지되면서 휨이나 뒤틀림이 없도록 개발에 성공한 것이지요”
원목를 잘라서 대부분 그렇게 하는 것이 아닌가요? 좀더 구체적으로 말씀을 해주시지요. 무엇이 KBS에 방송이 될 정도로 관심이 있었던 것인가요?
“예, 제가 말하는 원목은 고무나무였습니다. 보통 고무나무는 고무라텍스를 뽑고 나서 5년 정도 지나면 땔감으로 폐목처리를 합니다. 여기에 제가 관심을 갖고 폐목이 될 원목을 어떻게 바닥재 등으로 상품화할 수 없을까를 연구한 것이지요”

묘목장에서 직원 및 묘목장 관리팀과 함께
고무나무는 원래 물에 약하고 잘 썩기 때문에 태국 사람들은 그냥 폐목으로 사용하고 있던 것을 김해룡 이사는 1년에 걸쳐서 개발에 착수하여 오히려 기존나무보다 더 우수한 바닥재를 찾아 낸 것이다.
한달 가량 자연건조를 한 후, 고온 건조실에서 고무나무의 고무진을 제거하는
고난이도 기술이라 쉽지 않은 나무를 아파트 바닥재로 개발한 것이었다. KBS에서는 이점을 높이 사서 “김해룡 이사는 한국인으로서 자랑스러운 일이며, 특히 저렴하면서 부드러운 감촉의 고무나무 바닥재 개발은 원자재 고갈의 청신호가 아닐 수 없다.”라고 라디오를 통해서 소개도 했다.

묘목장 앞에서 정겨운 모습의 김해룡이사와 부인
묘목재배에서부터 완제품까지 일괄생산을 계획하고 계시는 듯한데… 설명 좀 해주시지요.
“앞으로 우드펠렛(wood pellet) 사업이 전망이 매우 좋아요. 물론 현재 하고 있는 목재 임가공 사업도 좋지만 태국에는 나무가 많고 속성재배가 가능하니까 무언가 새로운 것을 도전해보고 싶었지요. 그래서 한국에 있는 대기업에 제안서를 보냈더니 서너군데에서 관심을 보여왔는데 그 중 쌍용에서 온 투자의향서가 좋아서 작업이 마무리되어 이제 마지막 지분등 몇 가지만 남아 있습니다. 이것만 해결되면 바로 시작이지요.”
규모가 꽤나 큰 모양이다. 조금 더 자세히 설명을 해달라고 했다.
“ 200억원 정도의 투자규모입니다. 기계설비, 공장부지 매입, 묘목사업 등에 필요한 금액입니다. 매출 규모도 연간 4~5백억원은 됩니다. 이곳에 TAKU라는 나무가 있는데 4년만 되면 상품가치가 최고로 좋은 재료가 됩니다. 현재 정부 땅하고 이미 확보한 1300만평을 포함해서 약 2500만평을 확보하고 연간 TAKU를 약 80만주 심을 계획을 하고 있습니다.”
김해룡은 쌍용건설의 태국 목재 사업의 본부장 역할을 할 것으로 보여진다. 현재 운영하고 있는 목재업은 부인에게 맡기고 새로운 도전을 준비하고 있다.

SA KAEO 지방에서 2개월된 묘목 앞에서

TAGU 묘목이 가지런이 놓여있다.
TAKU는 3년 정도면 지름이 30Cm, 높이가 17-18m정도로 자라 Wood Pellet 에너지 연료용 원재료로 최고의 가치를 지낸 목재가 된다고 한다. 월간 200컨테이너 약 4만5천톤을 한국으로 수출할 예정이라고 한다. 이 나무는 태국인과 같이 개발하여 현재 씨앗을 발아 중에 있고, 수백만 그루의 나무를 발아시킨 상태로 현재 보관 중에 있다고 한다.

김해룡이사와 친구 김규식과 함께
울릉도에 대한 이야기를 빼 놓을 수 없을텐데 무언가 한 말씀해주시지요.
“울릉중학교 졸업식 때 교장선생님 축사중 한 말씀이 지금도 생각이 납니다.
1979년 졸업식 때 "너희들 사회 나가더라도 해외 나가더라도 국적은 바꿀 수가 있지만 너희들 학적은 바꿀 수가 없다" 라던 졸업식 축사가 생각이 납니다.비록 태국에서 반은 태국인으로 살아가고 있지만 항상 고향이 그립고 그곳에서 어린 시절 및 학창시절을 보냈으니. 저는 축복 받은 어린 시절 추억을 간직하고 중년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저의 꿈이라면 울릉도 울릉종합고등학교를 졸업한 학생중 일부 학생들을 저희들 공장 및 목재와 관련하여 Wood Pellet공장을 설립중인 이곳으로 취업을 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었으면 하는 작은 소망입니다”
부디 성공하여 줄 것을 기원한다. 그는 하나씩 하나씩 준비한대로 이루어 낼 것이다. 이역 멀리 태국에서 울릉인의 강인한 정신 하나만으로 지평을 넓혀가고 있는 김해룡을 우린 주시하고 있다.
Ruang Utai (Wood Industry Co.,Ltd.)
31,Soi Ladkrabang 14/1 Ladkrabang RD.
Ladkrabang District Bangkok,
10520, Thailand
Tel : 662)727-5121, H P : 668)-1551-90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