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2 지방선거 '클린선거' 원년으로] 돈·연줄·비방에 또 솔깃하시렵니까
15년 풀뿌리 민주주의 '3대惡'에 신음
"정책 대결·유권자들 올곧은 의식 절실"`
"지방선거? 솔직히 삼류 소설 아닌가?"
경북의 한 기초단체장은 어려운 고백을 했다. "지방선거는 더 이상 선거가 아니니 확 없애버리자"는 것이다. 사실 그의 고백처럼 지방선거는 썩을 대로 썩었다. 후보들 모두 돈을 바르고, 학연 지연으로 가며, 네거티브에 목멘다. 또 정당 공천이 곧 당선인지역이 많아 중앙에만 줄을 선다. 그러다 보니 정책 대결 같은 것은 한가한 얘기가 됐다.
그런데 유권자들은 이런 한심한 상황을 그냥 받아들이면서 제 잇속만 챙긴다. 하지만 지방자치제도를 지탱하는 기본이 지방선거이고 보면 그냥 넘길 얘기는 절대 아니다. 6.2지방선거 D-50일을 하루 앞둔 12일부터 4회에 걸쳐 선거 문화를 점검하고 이를 극복하기 위한 대안을 모색해 본다.
한국에서 지방선거가 처음 치러진 것은 1995년 6월27일. 15년이라는 적지 않은 세월이 흘렀지만 끈질기게 생명력을 유지하고 있는 것이 있다. 바로 돈 선거다. 특히 이번 선거는 선거구 수가 무려 2,296개고, 선출 인원도 사상 최대인 3,990명에 달한다. 유권자 한 명이 뽑아야 할 대상이 8명이나 되면서 돈 선거는 어느 때보다 기승을 부린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따르면 11일까지 전국에서 이번 선거 과정에서 적발된 불법 행위는 모두 1,611건. 이 가운데 금품 및 식품제공, 선심 관광 등 돈 선거 관련이 536건으로 33.3%에 이른다. 2002년 6.13지방선거와 2006년 5.31지방선거 당시 돈 선거 적발 건수가 20%대에 머물렀던 것에 비하면 더욱 혼탁해진 것이다.
전남 여수시장 출마예정자는 직능단체장 등에게 178만4,000원 상당의 음식물을 제공했다가 고발됐고 서울 모 구의원은 유권자 165명에게 3만5,000원짜리 굴비세트를 돌렸다가 수사를 받고 있다. 이에 대해 한 지역 정치인은 "20억원을 뿌렸다고 자랑처럼 떠들고 다니는 옛 기초단체장이 있는데 이건 해도 너무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네거티브가 판을 치면서 흑색선전과 상호 비방, 고소 고발도 기승을 부리고 있다. 지난달 26일 광주에서는 서모(68)씨 등 15명이 시장출마 예정자에 대해 1980년 5.18광주민주화운동 당시 행적을 비난하는 내용의 벽보를 붙이다가 경찰에 적발됐다.
선거철이면 어김없이 정당공천제의 폐해에 대한 비판과 개선의 목소리가 높지만 정작 국회는 모르쇠로 일관하고 있다. "지역 기반을 갖춘 정당의 경우 지방의원은 2억∼3억원, 기초단체장은 5억∼10억원의 공천 헌금을 바쳐야 한다"는 말은 더 이상 뉴스 축에도 들지도 못한다.
누구보다 이 폐해를 잘 알고 있는 사람은 현직 단체장들이다. 급기야 3선 연임 제한에 걸려 선거에 출마하지 못하는 전국 기초단체장들이 지난달 초 "기초단체장의 정당공천 폐지"를 외치고 나섰다. 김수영 경남 사천시장은 "정당공천제는 지방분권과 지방자치의 근본 취지를 훼손하고 있다"고 꼬집었다.
그런데도 유권자들의 개혁 의지는 보이지 않는다. 송건섭 대구대 행정학과 교수는 "이번 선거는 1인 8표제여서 유권자들이 관심을 갖지 않으면 출마자가 누군지도 모른 채 투표할 우려가 크다"며 "금품 살포, 흑색선전, 정당공천 같은 데 억매이지 말고 이웃과의 대화나 신문과 인터넷등을 통해 출마자들의 정책과 비전을 제대로 살펴 지역 일꾼을 뽑아야 한다"고 당부했다.

(1) 그만 헐뜯자
'내 사진을 공개하려면 눈을 가려 달라'고 말하는 아들 앞에서 가슴이 터지는 것 같았다. 선거 때만 되면 망령처럼 되살아나는 흑색선전 때문에 자식 볼 면목이 없다."
8일 오전 경북도청 프레스센터. 한나라당 최고위원회의에서 경쟁자들을 제치고 6.2지방선거 경북도지사 후보로 최종 확정된 김관용 지사는 아들의 병역 비리 얘기가 나오자 낯빛이 흐려졌다. 아토피성 천식 때문에 병역 면제 판정을 받은 아들을 물고 늘어지는 의혹 공세가 2006년 5.31지방선거에 이어 이번에도 터져 나온 탓이었다. 이번에는 특히 같은 당 후보들이 공천 경쟁 막바지에 병역 비리 의혹을 제기하며 네거티브 공세를 펼쳐 충격이 더했다.
사실 지금까지 지방선거에서 후보 간 정책 대결은 찾기 힘들었다. 그 대신 비방과 폭로전, 네거티브전 등이 판쳤다. 이번에도 마찬가지다.
현직 단체장이 3선 출마 제한에 걸린 경북 예천군에서는 6명의 군수 후보예정자가 나서 특정 예비후보를 향한 비방전을 벌였다. "L후보는 이번 선거에 대비해 자신의 업체를 팔았지만 불미스러운 일로 재산을 탕진했다" "예전과는 달리 인간성이 나빠졌다"는 인신 비방이 난무하고 있는 것이다. 이에 대해 L후보는 "정상 운영 중인 업체를 들먹여 경영을 어렵게 하고 무작정 인신 비방을 하는 선거 풍토를 바로잡을 것"이라며 경찰에 수사를 의뢰했다.
난무하는 비방전은 토착 세력 간 해묵은 반목과 무관하지 않다. 각 세력이 선거 때마다 '우리 쪽이 안 되면 다 죽는다'는 식으로 나오다 보니 비방전은 확대 재생산될 수밖에 없다. 신영국 신국환 전 국회의원 간 갈등이 총선과 지방선거 때마다 편가르기로 이어졌던 경북 문경시가 대표적이다. 이번 선거에서는 이한성(문경ㆍ예천) 국회의원이 2008년 18대총선에서 무소속 후보를 지지했던 신현국 시장을 공천에서 배제하고 제명까지 추진하면서 새로운 대립 구도가 형성되고 있다. 이 의원은 최근 구속된 신 시장의 측근 송모(39)씨와 전화 통화면서 "신 시장은 골로 간다"는 등 부적절한 발언을 한 사실이 드러나 구설수에 올랐다.
비방전이 난무하는 데는 정당색이 짙은 지역의 경우 특정 정당 공천만 받으면 당선된다는 인식이 뿌리깊게 깔려 있는 점도 영향을 미친다. 민주당 텃밭인 전남의 한 기초단체장 예비후보 캠프 관계자는 "후보들이 많이 나서다 보니 공천이 무엇보다 중요한데 공천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지역 여론이 아니라 계파 학연 혈연 지연"이라며 "지역 여론을 생각하지 않기 때문에 비방전으로 가더라도 별 부담이 없다"고 말했다.
지방선거까지 중앙 이슈가 점령해 버리는 상황도 비방전을 가중시킨다. 한 정당 관계자는 "한명숙 전 총리 재판과 천안함 침몰 사고 원인 등을 둘러싼 정치권의 공방이 지방선거까지 이어지면서 지역 정책 이슈가 실종될 수밖에 없고, 결국 이런 상황은 비방전 난무로 이어진다"고 우려했다.
물론 이런 네거티브 선거판에서 정책 선거를 지향하는 목소리도 터져 나오고 있다. 전북 익산시의 시장 도의원 시의원 등 예비후보 18명은 지난달 30일 기자회견을 통해 "익산시 역사 이래 이처럼 비방과 혼탁이 난무하는 선거는 없었던 것 같아 시민들에게 정말 미안하다"며 "실추된 시의 이미지를 높이고 시민의 알 권리를 충족하기 위해 정책 선거를 펼치겠다"고 약속했다.
김옥준 계명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각종 선거에서 과도한 네거티브가 판치면서 유권자들의 혐오감이 커지고 있다"며 "열세에 몰린 쪽에서는 가장 손쉽게 접근할 수 있는 것이 네거티브 전략이지만 지금은 후보 자신의 장점과 정책으로 승부할 시대"라고 지적했다.
한국일보 2010-4-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