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의 마지막 토요일, 한 무리의 사람들이 읍사무소 앞에 모였다

이 가을이 다가기전 우정도 다질 겸 어디론가 떠나보자며 모인 친구들이다

산행 지를 정해보란 주문에 생각해 볼 필요도 없이 "지금은 장재다 "대답은 했지만 산을 타 본 적이 까마득하다는 사람들도 섞여 있기에 걱정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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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재는 길이다. 남면 저동에서 북면 나리동을 잇는 울릉도를 가로지른 내륙 길이다. 나의 기억 속에 산으로 입력되어 있기는 하지만 정상을 향해 오르는 산이 아니라 재(嶺)를 넘어야 하는 긴 길이다. 나 혼자만의 생각인지는 모르지만 이 길은 가을 중에서도 아주 늦가을, 아니 초겨울이라 함이 더 좋은 11월 말 쯤에 올라야 좋다. 봄이면 갖가지 나물들과 여름이면 하늘을 볼 수 없는 밀림과 이름을 알 수 없는 버섯들이 길 중간까지 차고 앉아 걸음 떼기가 조심스러울 정도로 신선하고 아름답지만 단풍철이 끝난 늦가을 낙엽이 가득 들어차 있는 모습은 흰눈으로 변한 겨울보다 한해의 마지막을 더 확실하게 느끼게 해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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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 말나리가 많아 나리동이라 불려졌다는 나리동은 개척당시 93가구에 500명이 넘는 사람들이 살았을 정도로 큰 마을이었다. 주민이 많았기에 관공서와 여객선 부두 병원이 있는 남면을 오가는 사람들도 많았을 것이다. 파도가 세면 건널 수 없었던 천부항에서 출발하는 뱃길보다 발품만 팔면 쉽게 넘나들 수 있었던 장재는 많은 사람들의 왕래가 있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어느 겨울 선교사들이 이 길을 넘다가 눈에 묻혀 변을 당한 길이기도 한 이 길은 나리동 사람들이 누에고치를 팔러 넘어 다녔던 비단길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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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발은 저동에서는 울릉종합고등학교 옆 숯 골에서 시작하기도 하지만 대부분 작은모시게 동네
입구 공주상회 맞은편 골목길을 올라 까깨등에서 출발한다.

나리동에서의 출발은 마을입구 왼편(공군기지대 아래) ‘나리촌 백숙’ 식당 옆을 지나 10분쯤 들어가면 제법 큰 개울이 나타난다. 길 끝나는 지점에서 전봇대를 기점으로 개울을 건너 맞은 편 산속으로 들어가면 길이 나온다.

초입이 약간 애매하지만 자세히 보면 사람들이 지나다닌 흔적들이 선명히 남아있다. 그 다음부터는 산길 같지 않는 훤한 길이 이어진다. 성인봉 길과는 달리 계단이 없고 완만해 아주 오르기 좋은 길이다

정상을 올랐다는 뿌듯함과 시원한 풍경을 원한다면 이 길은 맞지 않다.

조상들이 걸었던 옛길을 걷는다고 생각하며 걸으면 아주 느낌 좋은 산행이 될 것이다. 봄이면 보너스로 삼겹살용 쌈 꺼리 나물도 한주먹 뜯을 수 있는 이 길의 총 산행시간은 넉넉잡아 3~4시간이면 충분하다. 대신 저동 까깨등까지는 차로 이동을 해야 한다. 저동 마을에서 나리동까지 완주를 하고 싶다면 공주상회 앞에서부터  까깨등까지의 시간을 약 30분 쯤 더 잡으면 된다. 나리동에서 천부까지도 걸어서 내려오고 싶다면 약 30분을 더 계산에 넣으면 된다. 도동까지는 버스를 이용하면 수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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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재 고개에서 약간의 욕심을 부린 우리들은 말잔등으로 방향을 바꾸었다.

휘몰아치는 바람에 귀가 먹먹했다. 바람을 따라 덮쳐오는 안개 속에 우박이 섞여있었다. 팥알만한 우박이 얼굴 때리며 우리들 사이를 휘졌고 다녔다.

한치 앞을 분간 할 수 없는 안개와 눈보라에 주위가 온통 하얗게 변했다. 기준으로 잡았던 성인봉이 보이지 않았다. 방향감각이 사라졌다. 발아래 선명히 이어지던 길 또한 낙엽에 묻혀 흐릿해져 버렸다. 필사적으로 주위를 두리번거리는 나와는 달리 친구들은 눈바람 속에서 아무런 의심도 없이 나를 따라왔다. 다행히 감각적으로 따라 들어간 산죽대 밭 속에서 선명한 길을 발견 했다.

바스락거리는 낙엽소리와 멋있게 떠나는 가을을 보여주려 데려간 장재는 왕왕대는 바람소리와 굵은 우박으로 정신마저 놓게 했다. 그래도 용하게 말잔등도 오르고 성인봉도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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똑 같은 산을 수십 번 오른다 해도 오를 때 마다 느낌이 다르다

계절에 따라 다르고 시간에 따라 다르고 같이 오르는 동행자에 따라 다르다

그런 특별한 느낌은 뭔가에 중독된 것처럼 산을 오르게 한다.

오늘 친구들과 함께 궂은 날씨 속에 벌벌 떨며 오른 성인봉은 두고두고 잊혀지지 않을 추억으로
남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