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도에 몸 싣고… 우리땅 독도를 순례하다
코리아컵 국제요트대회 찬밥, 선잠, 꾀죄죄한 얼굴 35시간 동승 뿌듯한 고생

"독도다!"

방향키를 잡고 전방을 주시하던 크루즈 요트 '아리랑'호(號)의 조재혁(59) 선장이 외쳤다. 갑판 위에서 돛을 조절하던 선원 조장호(29)·박흥수(43)씨, 그리고 기자는 설레는 마음으로 고개를 들었다. 어슴푸레한 새벽 안개와 구름에 휩싸인 어른 주먹만한 크기의 독도. 요트에서 바라보는 그 모습은 영화 '캐리비안의 해적'에 나오는 보물섬처럼 신비로웠다. 울릉도를 떠난 지 9시간 만이었다.

코리아컵 국제요트대회에 참가 중인 아리랑호를 비롯한 26척의 요트는 2구간 경주(독도→포항·약 240㎞)를 위해 지난 23일 밤 12시 울릉도 사동항을 출발했다. 독도까지 거리는 약 87㎞. 기자는 지난 21일 1구간 경주(포항→울릉도·약 209㎞)를 끝낸 요트 마니아들이 펼쳐놓는 바다 예찬이 하도 궁금해 12m짜리 요트인 '아리랑'호에 동승했다.

바다에서 올려다본 면적 7만3297㎡의 동도와 8만8740㎡의 서도는 사진 속 독도와는 다른 웅장함으로 다가왔다. 형형색색의 암석은 말 그대로 절경이었고 새까맣게 많은 갈매기들이 창공을 날며 독도 주위를 도는 요트들을 환영했다. 요트에 동승한 걸 후회하며 '집에 가고 싶다'는 기자의 생각은 눈 녹듯 사라졌다. 자욱한 안개 탓에 독도의 일출을 보지 못한 것이 유일한 아쉬움이었다.

87㎞ 바닷길을 밤새 달려 한국의 동쪽 끝 독도에 닿았다. 아침 안개에 휩싸인 독도의 모습이 신비롭다. 코리아컵 국제요트대회에 참가한 26척의 요트들은 독도를 2바퀴 돈 뒤 다시 240㎞ 떨어진 포항을 향해 돛을 올렸다./연합뉴스
밤샘 항해

독도로 가는 밤바다에서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바다와 하늘도 구분되지 않았다. "길도 안 보이는데 어떻게 가느냐"고 의아해하는 기자에게 조 선장이 GPS(위성항법장치), 내비게이션, 오토 파일럿(auto pilot·자동항해장치) 등을 보여줬다. 내비게이션에 독도를 찍으면 방위각(울릉도 동남쪽 115도)이 계산되고 그에 맞춰 오토 파일럿을 목적지 방향으로 맞추는 방식이었다. 하지만 조 선장은 "한눈팔다간 북한까지 흘러갈 수도 있다"며 긴장을 풀지 않았다. 바람과 조류에 따라 요트가 다른 곳으로 흘러갈 수도 있다는 것이다.

울릉도를 떠난 지 2시간쯤 지나자, 기자의 몸이 차가운 바닷바람에 떨리기 시작했다. 엔진을 켠 요트는 시속 13㎞, 풍속은 초속 25m에 달했다. "체감온도가 영하 10도 이하일 것"이라는 선원들의 얘기였다. 얇은 점퍼차림이었던 기자는 바람막이를 하나 더 걸쳤는데도 항해 내내 덜덜 떨어야 했다.

35시간의 항해

24일 오전 10시. 본부정의 시작 나팔 소리와 함께 독도를 한바퀴 반 돌고 포항으로 떠나는 2구간 경주가 시작됐다. 요트들은 일제히 바람과 너울을 타고 50도 이상 기울어져 앞으로 나아갔다. 아리랑호도 삼각 돛이 바람을 머금자 뱃머리가 공중으로 '부~웅' 떴다가 '철~썩' 하고 바다에 떨어지며 앞으로 나아갔다. 갑판에 있던 기자의 옷은 튀는 바닷물로 금세 흠뻑 젖었다.

독도 근해를 벗어나자 바다는 호수처럼 조용했고 햇살에 금빛으로 물들었다. 파도 높이는 1m 이내. 바람까지 잠자면서 요트는 적막 속에 빠져들었다. 조 선장은 "조금만 속도를 내자"며 엔진 시동을 걸었다. 엔진을 켜면 실격이었다. 하지만 조 선장은 "순위가 뭐가 중요하냐"며 "바다를 즐기는 게 최우선"이라고 했다.

잠자는 바다는 지루했다. 물을 아끼기 위해 전혀 씻지도 못했다. 식사는 찬밥에 라면, 식빵 몇 조각이 전부였다. 하지만 기자를 포함한 선원 3명은 조 선장을 도와 요트와 어구(漁具)를 살피느라 하루 2시간 이상 자는 것도 어려웠다. 조 선장의 아들 장호씨는 기자에게 "요트를 타면 인내(忍耐)의 시간을 즐겨야 한다"고 했다. 보이는 것은 짙푸른 동해바다와 하늘뿐이었다. 마음을 비우니 잡념도 사라지는 듯했다.

본지 정세영 기자(왼쪽)가 35시간 항해를 함께한 아리랑호의 선원 박흥씨를 도와 돛을 정리하고 있다./아리랑호 제공

다시 그리워진 바다

25일 오전 11시30분. 약 35시간 만에 종착지인 포항 북부해수욕장에 닿자 기자는 뭔가 큰일을 해낸 것 같은 뿌듯함이 밀려왔다. 선원들의 모습은 초췌했다. 검게 탄 얼굴에 까칠한 수염, 덕지덕지 바른 자외선 차단제가 허옇게 남아있었다. 기자의 얼굴도 똑같았다.

춥고 배고팠고 또 정말 지겨웠던 첫 요트 항해였지만, 발이 육지에 닿는 순간 기자는 다시 바다를 생각하고 있었다. 이번 대회에선 드래이크호가 20시간12분32초로 우승했다. 기자가 동승한 아리랑호는 엔진을 켜 실격당했다.
@2009-5-26 조선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