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뇨와 힘겹게 싸우는 독도 김성도 이장
의료진 방문 '선착장 진료'"이제 그만 육지 오세요"
자식들 성화에도老부부 "독도 못떠난다"

7일 오후 3시 30분 경북 울릉군 울릉읍 독도리 동도 선착장에 울릉도와 독도를 왕복하는 쾌속선이 멎었다. 관광객 사이에 섞여 영남대 의대 이형우(51) 교수가 바위 섬에 발을 디뎠다. 검정 야구 모자를 푹 눌러쓴 독도리 김성도(70) 이장이 먼저 선착장에 나와 있다가 반색을 했다.

이 교수의 독도 방문은 제약회사인 한국노바티스와 한독약품이 '세계 당뇨병의 날(14일)'을 맞아 2009년 상반기까지 펼쳐나갈 도서지역 의료 지원 활동의 일환이다. 이 교수의 첫 진료 대상이 독도 주민인 김 이장이었다.

이 교수는 당뇨병 전문가이고, 김 이장은 당뇨병 환자다. 하얀 의사 가운을 걸친 이 교수가 김 이장의 오른손 중지에 혈당측정기의 채혈침을 찔렀다. 김 이장이 "아얏!" 했다. 고기잡이로 굳은살이 박인 김 이장의 손에 침이 잘 들어가지 않아 피가 찔끔 나왔다. 혈당측정기 액정 화면에 숫자가 떴다. 이 교수가 혀를 찼다.

"혈당치가 308이 나왔어요. 너무 높네요. 오늘 약 안 드셨죠? 정상인은 식사를 한 직후에도 혈당치가 140 정도 나옵니다. 식이요법도 하고, 인슐린 주사도 맞으셔야 해요. 놔두면 합병증이 생겨요."

김 이장이 "오늘 당뇨병 약을 깜빡 잊고 안 먹었다"며 쑥스러워했다. 이 교수가 김 이장에게 혈당측정기, 저혈당 설탕, 당뇨 관리 식단표 등을 전달했다. 김 이장은 "내가 독도에서 산다고 성금을 전달해온 분들은 계셨지만 직접 의사선생님이 와서 '선착장 진료'를 해준 건 이번이 처음"이라고 했다. 이 교수는 "인근에 병원 하나 없어 고생하고 있다는 사연을 듣고 기꺼이 왔다"며 "가는 길에 울릉의료원에 들러 새 처방전을 받으실 수 있게 해놓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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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일 오후 경상북도 울릉군 독도 동도 선착장에서 이형우 교수(왼쪽)가 독도 주민 김성도 이장(가운데)의 혈당 수치를 측정하고 있다./이신영 기자

울릉도가 고향인 김 이장은 1967년 제주도 해녀 출신 김신열(72)씨와 결혼했다. 1970년 첫딸 경화(39)씨를 울릉도에서 낳은 뒤 독도에 살던 고향 선배 고(故) 최종덕씨를 따라 독도에서 지내며 홍합과 전복을 잡았다. 부인이 울릉도에 살며 둘째 딸 진희(36)씨, 아들 도엽(34)씨를 낳았다.

김 이장 부부는 이후 아이들을 친지들에게 맡기고, 독도에서 지냈다. 처음엔 함석집을 짓고 살다 나중에 독도 서도(西島)에 2층짜리 시멘트집을 손수 지었다. 울릉도 집에는 겨울철 2~3개월만 머물렀다.

울릉도에 사는 둘째 딸 진희씨는 "어릴 때 나를 돌봐준 이웃 아줌마가 엄마인 줄 알고 아줌마를 '엄마'라고 부르기도 했다"고 말했다. 이웃들은 "애들 놔두고 독도에서 무슨 고생이냐"고 김 이장 부부를 말렸다.

그때만 해도 김 이장의 '주민등록상 주소지'는 울릉도였다. 선배인 최씨가 1987년 작고하자 김 이장 부부는 1991년 독도로 주소를 옮겼다. 1997년 정부에서 김 이장네 집 옆에 3층짜리 건물을 번듯하게 새로 지어줬다. 이곳은 현재 김 이장 부부의 거처 겸 어업인들의 숙소로 쓰이고 있다. 김 이장이 관리인을 맡고 있다.

김 이장 부부는 이 건물 3층에 있는 방(11㎡·3.5평)을 쓰고 있다. 김 이장은 2007년 독도리 이장으로 임명돼 경상북도와 울릉군에서 매월 수당 120만원을 받고 있다. 2005년 국민들이 성금을 걷어 마련해준 1.5t짜리 소형 어선 '독도호'의 선장이기도 하다.

젊을 때나 지금이나 김 이장은 새벽 5시에 일어나 파도 높이를 파악한 뒤 파도가 높지 않으면 1주일에 한두번 바다로 나가 고기를 잡는다. 날씨가 궂으면 마땅히 할 일이 없어 부부가 나란히 앉아 TV를 본다. 부인은 "덩치 큰 외국 사람들이 싸우는 프로 레슬링이 제일 재밌다"고 했다. 자식들과 매일 아침·점심·저녁마다 세번씩 통화한다고 한다.

김 이장은 "나이가 들어 건강이 자꾸 나빠져서 걱정"이라고 했다. 작년 12월 6일 오전 3시쯤 김 이장이 자다 깨서 물을 마시고는 구토를 하기 시작했다. 부인이 울릉도에 사는 둘째 사위 김경철(43)씨에게 연락했다. 김 이장은 경북도 소방본부에서 보내준 헬리콥터를 타고 대구 계명대 동신병원으로 이송됐다. 뇌경색 진단을 받았다.

김 이장은 경북 울진에 사는 맏딸 경화(39)씨 집에서 두 달간 요양하고 독도로 돌아왔다. 자식들이 "인제 그만 육지로 나와서 같이 살자"고 했지만 김 이장은 "평생 바다에서 살아와서 육지는 편치 않다"고 뿌리쳤다.

김 이장은 "뇌경색으로 쓰러진 뒤 건강하게 살려고 매일같이 마시던 술을 완전히 끊었다"고 했다. 부인은 "단둘이 지내다 이 사람이 쓰러지니 말도 못하게 두려웠다"고 했다.

진희씨는 "두 분만 지내시는 게 안타까워 부모님께 전화를 걸면 오히려 '신종플루 위험하니까 사람들 많은 데 가지 마라'고 자식들 걱정을 하신다"며 "요즘 남편과 '부모님이 더 나이 드시면 우리가 독도로 주소를 옮기고 아버지에 이어 독도 주민이 되자'는 얘기를 자주 한다"고 했다.

"몸도 안 좋은데 독도에 계속 사는 이유가 뭐냐"고 묻자 김 이장은 버럭 화를 냈다. "내가 없으면 독도가 어떻게 되겠어요? 처음엔 고기 잡으러 들어왔지만 살다 보니 내가 여기 사는 게 우리나라를 위해 참 중요하다는 걸 깨달았죠. 이제는 죽는 날까지 독도 지키며 살 겁니다."

조선일보 2009-11-10  이신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