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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감한 새끼 괭이갈매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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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이 있는 가족들과 와달리로 물놀이를 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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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심은 홍합밥에 수재비를 뜯어 넣은 어죽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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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른들은 그늘막 밑에서 쉬기도 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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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은 입술이 파랗게 변해도 나올 생각이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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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택된 자만(^^) 볼 수 있는 한솔폭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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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솔폭포 바닷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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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를 타고 들어갔다 나왔습니다

                                          
                                                                   
                                                                         고향                 

 

 초만원이었던 공동묘지에 빈자리가 늘고 있습니다. 사람들이 가문의 영광을 기원하며 천하명당에 연연하던 시절 땅 한 평 얻지 못해 산비탈 음지조차 감사한 마음으로 터를 잡았던 주검들도 있었는데 언젠가부터 둥글게 패인 구덩이만 남긴 빈 무덤들이 늘어났습니다. 귀신도 쉰다는 윤달이 낀 해가 지나고 나면 이런 현상들이 부쩍 두드러졌습니다. 조상 산소 돌봄을 당연한 일로 여기고 산 부모 돌보듯 하던 마지막 세대들이 자신이 떠남으로 잡초가 터를 잡고 나무가 뿌리를 내린 채 짜부라진 모습으로 방치될 것을 염려하며 갈수록 힘들고 바빠지는 세상살이에 이래저래 시달리는 후손들을 위해 마지막으로 해 줄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하여 다 싹아 골분이 된 묘를 파헤쳐 뼈를 추스리고 개화장을 하여 관리하기 쉬운 공원묘지로 이장을 하거나 사방에 뿌려 날려 보내기도 하였고 터가 나빠 후손들이 잘되니 못되니 탓할 일도 없을 것이라는 변명 아닌 변명을 하며 자주 찾아가 돌보지 못함을 죄스럽게 생각하던 후손들이 죄의식에서 벗어나고자 행한 일들 이기도합니다. 집안 대소사를 나누어지던 대가족시대에는 당연한 일이고 미덕이었던 일들이 바쁘고도 외로운 핵가족 시대가 되고 보니 너무나 큰 짐으로 여겨져 행해지는 신 풍속입니다.

처삼촌 벌초하듯 이라는 말조차 정겹게 느끼는 마지막 세대로서 나 역시 그 짐을 지라면 나는 지겠지만 내 자식에게는 물려주고 싶은 마음은 없습니다. 물 흐르듯 세월이 흐르고 세상은 그렇게 흘러가기에 시대 따라 변하는 풍속도 받아들여야 순리라고 생각하는 사람으로서 숨 끊어진 후 내 육신도 그렇게 떠날 것이기에 미련도 없지만 조금 안타까운 것은 타향살이를 하면서도 고향을 잊지 못하는 것은 그곳에 혈육으로 맺어진 조상들이 묻혀있기 때문이기도 하기에 새롭게 생겨난 이 신 풍속이 고향의 끈을 끊어버리는 것은 아닌가 해서입니다. 이런 일들이 잘된 일이네 잘못된 일이네 따지고자 한 말은 아닙니다 그냥 고향이 하나의 여행지로 변하고 있다는 것을 말하고 싶을 뿐,


2010년 8월 1일       박경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