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나리동
용출소 )
바람의 길
아이들이 어릴 때 큰방이라고 사용한 것이 화장대 하나와 책장하나 젖먹이가 있는 식구 넷이 다리를 뻗으면 꽉 들어차는 넓이와 그 보다 더 작은 골방 하나를 가진 지붕 낮은 집에서 살았습니다. 밤이면 배밀이를 하던 작은 애와 헤엄을 치듯 온 방을 헤매는 큰애의 몸부림에 어른들은 벽을 지고 누웠습니다. 어쩌다 남편이 술이 취해 온 날이면 아이들이 치일세라 수잠을 자기도 했습니다. 특히 여름이면 빨갛게 달아오른 양철지붕 아래 찜통 같은 집안에서 더위와 씨름 했습니다. 매미 날개 짓 소리가 나는 선풍기는 무기가 될 수도 있었기에 그물망으로 덮어 씌워버려 바람은 그것에 부딪쳐 공중제비를 하듯 흩날려 미지근했습니다. 아이들은 그래도 한낮 햇살로 데운 물통 속에 앉아 더위를 식힐 수 있었지만 아이들의 행동반경을 벗어 날 수 없었던 나는 월남치마에 바람을 모아 안고 더위와 싸웠습니다. 그렇게 낮을 보내고 해 그름이 되면 집 벽과 붙은 작은 골목에 나가 자리를 깔았습니다. 그 골목은 이집 저집 양철지붕을 타고 내려오다 지친 햇살도 쉬어가는 바람이 머무는 곳이었습니다. 밀가루에 막걸리를 넣어 부풀린 술떡이 있고 가물어 배배틀린 오이덩굴에서 따온 오이가 있고 어쩌다 물 건너온 과일들이 있기도 했던 이웃집 사정사가 내 이야기처럼 오고갔던 그곳은 달아오른 열기로 인해 빨갛게 부풀어 오른 진공 상태의 빈 냄비 속 같은 공기를 실어 달려 나가는 바람의 길이기도 했습니다. 가끔 그곳에서 물놀이를 가자는 의견이 나오기도 했습니다. 섬에 살면서도 파도 소리 한번 제대로 들어보지 못하고 여름을 보내다가 여행을 가듯 바다에 간 날이면 아이들은 내륙의 아이들처럼 파도를 무서워하며 바위틈에서 빠져 나올 줄을 몰랐습니다.
그렇게 자랐던 아이들은 청년이 되었고 여름인데도 문을 꼭꼭 닫아걸고 사는 시대에 적응하지 못하고 에어컨 바람보다 선풍기 바람이 더 좋다며 문을 열어 제치는 엄마를 이해하지 못합니다.
지금 그곳을 찾는 사람은 없습니다. 바람만 여전히 그 곳을 지나다닙니다.
그곳은 처음부터 바람의 길이었기에...
2010, 8, 31 박경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