故 晴岡先生 永訣式(고청강선생영결식)
弔辭(조사)
丁巳(정사) 九月十四日(9월14일) 우리들 온 郡民(군민)이 한결같이 尊敬(존경)하고 推仰(추앙)하던 故 晴岡 金夏佑 先生(고 청강 김하우 선생)께서 幽明(유명)을 달리 하셨다는 悲報(비보)에 슲음을 禁(금)할길 없으며, 오늘 이와 같이 故人(고인)의 靈前(영전)에 삼가 고개숙여 弔辭(조사)를 드립니다.
至今(지금)이 瞬間(순간)에도 眞正(진정) 이 世上(세상)을 떠나시었는지 믿어지지 않코 仁慈(인자)하시고 따사로운 손길이 어느 한곳에서 病苦(병고)에 시달리는 불상한 人生(인생)을 繼續(계속) 돌보시고 계시리다 믿어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新村(신촌) 어른 께서는 정녕 이 世上(세상)을 下直(하직)하시어 오늘 이 자리에서 온 郡民(군민)이 슲음의 눈물을 머금고 있는 가운데 鬱陵郡內 社會 團體葬 (울릉군내 사회 단체장)으로 永遠(영원)히 幽明(유명)을 달이 한 故人(고인)과 離別(이별)의 마지막 儀式(의식)을 갖게 되었습니다.
오늘 이 葬禮式典(장례식전)에서 郡內(군내) 各級 機關團體長(각급 기관단체장) 地方有志(지방유지) 그리고 이 地域住民(지역주민)과 遺家族(유가족) 여러분을 모시고 葬禮委員會 委員(장례위원회 위원)을 代表(대표)하여 故人(고인)의 靈前(영전)에서 삼가 冥福(명복)을 빌어 마지 않는 바 입니다.
晴岡 金夏佑 先生(청강 김하우 선생)께서는 八才(팔세)의 幼年期(유년기)에 忙忙(망망)한 滄海(창해)의 險難(험난)한 波濤(파도)를 무릅쓰고 一葉片舟(일엽편주)에 몸을 싣고 이곳 鬱陵(울릉)에 定着(정착)하시어 孝行(효행)과 善行(선행)을 學問(학문)으로 삼고 德性(덕성)을 硏磨(연마)하고 人格(인격)을 도야하며 醫術(의술)을 익혀 가난하게 病(병)들어 가는 不遇(불우)한 사람들의 生命(생명)을 救(구)하기 위하여 獻身(헌신)할것을 覺悟(각오)하시고 이를 實踐(실천) 躬行(궁행)하여 惡(악)이란 것을 모르는 오직 善(선)에의 길을밝히는데 一生(일생)을 다 하시어 萬人(만인)이 그 行蹟(행적)을 길이 본닫지 않을자 없습니다.
故 金夏佑 先生(고 김하우 선생)께서는 原來(원래) 天品(천품)이 仁慈(인자)하시고 淸廉剛直(청렴강직)하시어 남의 어려움을 그데로 보고 넘기실수 없는 性品(성품)을 지니시어 아무리 苦(고)되고 어려움이 있으시드라도 몸소 찾아서 도와주시고 오직 博愛(박애)의 人情(인정)에만 一生(일생)을 살아 오셨습니다..
어떤 때는 當身(당신)께서 病患(병환)으로 起動(기동)이 어렵고 寢食(침식)마저 잊어시 면서도 끊일줄 모르게 찾아오는 數(수) 많은 患者(환자)들을 되돌려 보낼수 없어 한사람도 돌려 보내는 일없이 골고루 보살펴 주신 仁慈(인자)하시고도 仔詳(자상)하신 분이 었읍니다.
때로는 自身(자신)의 玉體(옥체)를 生覺(생각)치않고 無理(무리)한 보살핌을 하시다가 혹시 父母(부모)님의 患候(환후)가 더 惡化(악화)되지는 않을가 두려원 한 나머지 子息(자식)된 道理(도리)로서 찾아오는 患者(환자)를 되돌려 보내므로서 이 事實(사실)을 아시고는 크게 꾸짖으셨다는 일도 數次(수차)에 걸쳐 듣고 보아 왔습니다.
또한 病患(병환)에 있으면서도 찾아오지 않는 이가 있다는 消息(소식)을 들으시면 險惡(험악)한 날씨에도 不拘(불구)하고 晝夜(주야)를 가림없이 親(친)히 찾아서 돌보아 주셨으니 그 수가 이에 따를수 있겠으며 이 恩惠(은혜)에 報答(보답)을 다 하였다 하겠습니까?
이곳에 오래 머물러 生活(생활)하는 住民(주민)으로서 新村(신촌)어른의 恩惠(은혜)를 입지않은 사람없이 어린이로부터 老人(노인)에 으르기 까지 몸에 조금만 異常(이상)이 있으면 어느 때이고 新村(신촌) 어른을 찾아 가야하는 것이 哲理(철리)로 알고 있었으며 또한 그렇게 맞아 주셨습니다.
現世(현세)는 各自(각자)가 치열한 生存競爭(생존경쟁) 속에 서로가 잘살아 보겠다는 一念下(일념하)에 血眼(혈안)이 되어 鬪爭(투쟁)하고 힜는 이때 오직 先生(선생)께서만은 어려움에 있는 사람을 한사람도 빼놓지 않고 犧牲(희생)과 奉仕(봉사)의 손길로 數(수)많은 人命(인명)을 救濟(구제)하여 주셨으니 그 누가 尊敬(존경)하지 않을수 있겠습니까?
또한 故 金夏佑 先生(고 김하우 선생) 께서는 이곳 住民(주민)에 對(대)한 恩惠(은혜)만 베푸신 것이 아니라 孝行(효행) 또한 至極(지극)하시어 父母(부모)에 對(대)한 恭敬心(공경심)도 그 누가 따를수 없어 全郡民(전군민)의 龜鑑(귀감)이 되어 왔으며 이에 따라 子孫(자손)들도 至極(지극)하신 孝行(효행)을 이어 받아 父母(부모)에 對(대)한 孝道(효도)를 다하여 世人(세인)의 稱頌(칭송)이 藉藉(자자)한바 이 모두가 先生(선생)께서 實行(실행)하여 오신 遺業(유업)이라 하지 않을수 없읍니다.
故 金夏佑 晴岡先生 (고 청강 김하우 선생)의 이와 같은 善行(선행)과 慈悲(자비)하신 功德(공덕)은 온 郡民(군민)의 龜鑑(귀감)이 되어 一九九六年度(1966년도) 補化院(보화원)으로부터 篤行賞(독행상)을 受賞(수상)하게 되었으나 賞金(상금)은 全額(전액) 奬學基金(장학기금)으로 삼아 補化奬學會(보화장학회)를 設立(설립), 向學(향학)에 붙타는 不遇學生(불우학생)들의 勉學(면학)의 機會(기회)를 넓혀 주신바도 있읍니다.
이와 같은 先生(선생)의 善行(선행)과 偉勳(위훈)을 後世(후세)에 永遠(영원)히 남기고자하는 마음이 온 郡民(군민)의 統一(통일)된 意思(의사)로 맺어져 郡民(군민)의 精誠(정성)으로 一九七五年(1975년) 藥水公園(약수공원)의 아담한 자리에 선생을 기리는 頌德碑(송덕비)를 建立(건립)한바 있으나 어찌 이것으로 先生(선생)께서 남기신 業績(업적)에 대한 萬分의一(만분의 일)이라도 報恩(보은)에 當(당)하였다 하겠습니까?
英靈(영령)이시여 肉身(육신)은 이미 저 世上(세상)으로 떠나시더라도 지나간 八十八年間(88년간) 베풀어 주시던 慈悲(자비)와 善行(선행)을 우리들 後孫(후손)들에게 빠짐없이 물려주시고 저 世上(세상)에서도 끊임업는 가르침을 주셔서 더 많은 善行(선행)과 孝行(효행)을 이어받게 하여 주시옵소서
先生(선생)께서 남기신 功績(공적)과 偉勳(위훈)을 우리들 在世人間(재세인간)은 길이 본받아 상부상조하고 협동하는 정신으로 살기 좋은 이 고장, 자랑스런 鬱陵(울릉)을 만들것을 굳게 盟誓(맹서) 하오니 고이 잠드소서
一九七七年 九月 一七日(1977년9월17일)
故 晴岡 金夏佑 先生 社會葬 (고 청강 김하우 선생 사회장)
葬禮委員長 (장례위원장)
李 永 官(이영관)
원문은 한문으로 된 것이나( ) 안에 한글로 풀어 쓴 것이며, 맞춤법 또한 원본의 의미를 살리기 위해 원본에 충실하였다.

영결식이 끝나고 도동을 한바퀴돌고........

김하우옹의 상여가 떠나는 날은 온 울릉군민들의 슬픔의 날이었다.



큰 어르신을 보낸 집안친지들의 기념촬영